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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행명 <대구중구 골목문화 시니어 해설사> |
삼한시대부터 이어져온 ‘달성토성’은 대구의 2천년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재 사적(제62호)이다. 청동기시대 이후 인근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이곳에 토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풍납토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은 가장 오래된 성곽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신라 첨해왕 15년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극종을 성주로 삼았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역사가 전하는 달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달성토성은 신라시대부터 군사기지로 이용됐으며, 고려 공민왕 2년에 석축을 더했다. 성벽 아래에는 조개무지와 토기사용 등의 흔적이 있다.
고려 말 달구벌의 주요 지배세력인 달성서씨의 근거지였던 달성은 세종 때에 대구 관아 부지로 책정됐다. 당시 구계 선생은 달성토성 땅을 헌납한 공으로 포상을 받게 되었으나, 포상 대신 고을 사람들에게 거둬들이던 환곡의 이자를 경감해 주도록 건의해 유명해졌다.
달성토성은 경상감영이 이곳에 설치되면서 석축을 했지만 정유재란으로 다시 폐허가 되어 방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달성에 조성된 공원과 대구신사는 철거되었고, 1969년 대구시가 달성공원으로 개원해 오늘에 이르렀다. 경북대 조경과 모 교수와 조선시대 마지막 왕위 계승 권자였던 영친왕 이은의 아들 이구의 설계에 의해 동물원까지 만들어지면서 달성공원으로 불리게 됐다.
대구지역 노인 상당수는 달성공원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달성공원에서 난생 처음 코끼리와 사자를 보았으며, 키다리 수문장 류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장수의 화술에 속아 엉터리 약을 샀으며, 야바위꾼들에게 돈을 잃기도 했다. 사주팔자와 궁합을 본다고 길거리에 앉아 본 것은 물론이다.
달성토성에는 느티나무·느릅나무·회나무·팽나무·이팝나무 등 향토수종이 많다. 순종이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달성토성을 방문하여 심었다는 향나무 두 그루도 공원의 중앙에 버티고 있다. 일제는 조경사업을 하면서 근대식민지 개척시대를 상장하는 가이즈카 향나무와 일본 벚나무를 곳곳에 심었다.
최근 들어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달성토성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사업이 잘 진행되어 2천년을 이어온 대구정신을 찾는 소중한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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