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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말로 예술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인 예술일 것이다. 형태나 색채도 없이 오직 음정과 박자만으로 우리들 가슴을 울려주기 때문이다. 음정과 박자로 작곡된 음악에 노랫말을 붙이면 그 추상성은 구체화되어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노래가 된다. 슬픔을 삭이는 노래, 고통을 잊으려는 노래, 애인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 희망과 구원의 노래들은 우리 일생을 감돌고 또 관통해 흐르고 있다. 그래서 노래는 삶의 표현이요, 감정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령과 남녀의 처지나 형편에 따라 평생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고,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잊지 못하는 노래가 있기 마련이다.
내게도 잊지 못하는 노래가 있다. 노래 곡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노랫말에 얽힌 사연으로 해서 평생을 두고 부르고, 또 부르며 잊지 못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늦은 가을 음악시간이었다. 담임 여선생님이 풍금을 타기 시작했다. 노래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노랫말은 이러했다. ‘서쪽 하늘 불그레 구름 꽃피고/ 엄마 잃은 기러기 슬피 우는데/ 물소리 조용해진 이 강변에서/ 종이배만 두둥실 떠났습니다.’ 선생님이 ‘서쪽 하늘 불그레 구름 꽃피고’까지 선창하다가 갑자기 양팔로 건반 위를 꽉 눌렀다. 이 굉음 같은 소리에 꼬마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교실 안이 진공상태가 되었다가 곧 지껄이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의 어깨에 잔물결이 이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이 길 잃은 기러기요, 조용한 강변에서 떠가는 종이배로 생각되어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은 이북의 원산 부근이 고향이었는데 6·25전쟁으로 실향민이 되었다고 했다.
이 노래는 실향한 선생님과 노랫말이 그려낸 그림으로 해서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해 부르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고, 그 후로 선생님을 한번도 뵙지를 못했다. 이제는 이 세상에 살아 계시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색 바랜 낡은 졸업사진에서나 선생님의 옛 모습을 희미하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죽어서 혼이 되어서나마 고향을 찾아 다시는 길 잃은 기러기와 강변 떠난 종이배가 되지 마시길 기원해 본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옛 동무들을 만날 때마다 이 노래를 아는지 물어보았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쪽 하늘 불그레 구름 꽃피고 엄마 잃은 기러기 슬피 우는데….’ 이 노래만 선생님과 나를 이어주는 슬픈 추억의 다리로 남아 있다.
권원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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