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몇 년 전 터졌던 초대형 스캔들로 인해 온 국민이 생소했던 큐레이터(curator)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제 거의 잊어진 옛 이야기처럼 회자되는 정도지만, 몇 달 동안이나 안방극장을 달구었던 핫한 뉴스였다. 아직도 큐레이터라고 하면 연예인 급의 화려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영화나 드라마로 대표되는 대중문화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영향이 크다. ‘금수저’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내세우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 나왔던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유명 관광장소로 변하면서 미술의 내적인 역할보다 화려한 외면만 강조되는 꼴이다. 어쨌거나 가공된 이미지에도 원본은 있을 것이다. 섬세한 세공을 거친 보석이 원석과 다르지만,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만든 캐릭터도 세상에 전혀 없는 이미지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입혀진 큐레이터의 이미지를 벗긴 진짜 큐레이터는 어떤 사람들일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처럼 사는 큐레이터, 미술관이나 기관에서 연구와 기획을 하는 학예연구사, 미술현장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기획자 등 미술소통 방식이나 목적의 차이에 따른 역할과 활동 범위가 있다.
큐레이터는 미술계에 꼭 필요한 전문가들이다. 큐레이터의 활동이 여타의 사회활동에 비해 미미할 수 있지만 신선함이나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큐레이터의 역할과 삶은 문화적인 영향에 비해 그다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금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이 아니면, 예술가들만큼이나 가난하고 지독하게 공부해야만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의 삶은 더 치열하다. 며칠 전 고(故) 이원일(1960~2011)에 대한 평전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립투사, 방랑자, 세계촌놈, 미술계의 인디애나존스 등 ‘예술 전투기 조종사’를 자임하며 아시아와 한국미술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1세대 독립큐레이터였다. 그의 일생은 너무 짧았다. 5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를 일으킬 만큼 치열했던 독립큐레이터의 삶이었다. 그가 사망한 지 5년이 지났다.
그처럼 열심히 활동하는 독립기획자들이 적지 않다. 독립큐레이터의 일터는 치열한 미술현장이다. 작가에게 작품이 남겨지듯이 큐레이터에게는 기획의 뜻이 남는다. 그가 품었던 미완의 뜻은 후배 독립큐레이터에게 승계된다. 그 고민과 아픔이 어떠했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정명주 <아트스페이스펄 큐레이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산책] 독립큐레이터에 대한 단상](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1/20160112.01025080649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