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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람 <시인> |
무료한 날들은 해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 뭐 좀 새로운 것은 없을까. 가슴 뛸 만한 일은 이제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일상에서 벗어날 방법은 도무지 없어 보인다. 그나마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훌쩍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던 나만의 장소로의 여행. 하지만 그마저도 휴가를 내기가 버거운 현실에 매여 있다. 가끔 친구라도 만나 소주 한 잔 마시며 회포를 풀고 싶지만 다들 나처럼 일상에 붙들려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듯보인다.
또 한 해가 흐르고 나이를 더 먹는다는 생각에 이르면 한숨부터 나온다. 일상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이 혹독한 일상 가운데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바로 ‘사소한 것들에 의미 부여하기’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너무나도 유명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의 일부분이다.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이고, 내가 처한 상황이나 여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다. 하지만 때로 가장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일 때가 있고 나의 바람이나 소망을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람 또한 나일 수 있다. 위 시를 조금 다르게 읽어 본다. 언젠가 내가 한없이 외롭고 답답함 속을 헤매일 때에 내가 나인 것 같지 않고 나란 존재의 의미가 무의미하게만 느껴질 때 오랫동안 함께한 나의 일상으로 낯선 나를 한번 불러 보리라고.
“○○야, 밥 먹어라. ○○야, 언제 들어 오노? ○○야, 잘 자래이.” 요즘 들어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음성이 사무친다. 가장 절실한 것은 가장 사소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너무나 많은 소중한 사소함들을 잃어버린 후이다. 새해가 온다고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거기에 ‘새-’라는 의미를 부여함으로 마치 어제의 태양은 사라지고 새로이 태어난 싱싱한 태양이 떠오른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가장 익숙한 것을 가장 소중하게 바라보는 것은 무료하고 지겨운 것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나에게 있는 일상의 사소함으로 불러볼 것은 무엇인지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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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사소함의 소중함](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1/20160113.01023080152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