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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해 <계명대 시각디자인과 강사> |
‘보르카’라는 이름의 기러기가 있었다. 희한하게도 깃털 없이 태어났다. 하는 수 없어 엄마가 털실로 옷을 짜 입혔다. 추위에 떨던 보르카는 기뻤지만 친구들이 놀려댄다. 헤엄을 치려고 해도 털옷이 젖어 포기한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극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의 도입부다.
달랑 가죽 주머니 하나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온 우리 인간. 보르카와 맞먹을 장애다. 연약한 가죽에 솜털이 전부이니 찢어지기 십상, 얼어 죽기 딱. 무어라도 만들어 걸쳐야 했다. 사냥이 본업인 원시인에게 동물의 털가죽만큼 만만한 재료는 없었으리라.
동굴생활 접은 지 한참 됐건만 아직도 현대인은 동물의 털을 뺏는다. 이제는 농장에서 대량으로 가죽을 벗긴다. 비참한 사육 현실과 잔인한 모피 채취 과정 때문에 모피용 동물 사육을 전면 금지한 선진국이 꽤 있다. 이를 대신해 세계 최대 모피 생산국이 된 중국. 2013년 이 중국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모피 반대 운동이 있었다. 바로 동물보호단체 페타가 의뢰하고 광고대행사 오길비앤매더가 기획한 ‘Fur Hurts(모피는 고통)’ 캠페인이다.
중국 북동부 선양의 미술가 36명이 밍크, 토끼, 여우를 실물과 아주 닮게 제작했다. 그리고 여기에다 털 대신 바늘을 하나하나 꽂았다. 총 55만여개의 바늘이 사용된 동물 모형들은 선양의 한 쇼핑센터에 전시되었다. 시민들은 가까이 다가가서야 비로소 촘촘히 박힌 ‘고통의 바늘’을 확인하고 경악한다. 모형은 입체 프린트로도 제작되어 거리에 걸렸고 온라인으로 모피 반대 서명도 받았다. 참혹한 영상과 자극적인 선동을 자제하고도 캠페인은 8만명이 넘는 중국인의 서명을 받아냈다. 얼마나 마음 아팠으면.
이래서 우리 인간은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겉은 비록 최하급 가죽을 둘렀어도 이렇게 공감과 연민이라는 고차적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던가. 가끔 필요 없는 것을 분위기에 휩쓸려 사기도 한다. 으스대고 싶어서 지갑도 연다. 하지만 온통 바늘이 꽂힌 코트를 입을 만큼 강심장은 못 되는 우리들 아니던가.
그나저나 보르카는 어떻게 됐을까. 깃털이 돋아나는 기적 따윈 없었다. 백조나 앵무새 깃털을 탐내지도 않았다. 예전 옷 그대로 잘살고 있단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 수영도 배우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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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바늘 코트](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1/20160125.0102208080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