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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를 갈 때면 어김없이 엄마는 이러셨다. “이야, 심 봉사 눈 떴네!” 신기하게도 이 말에 세상이 더 환해지는 것만 같았다. 새 전구가 실내를 밝히면, 어린 내 눈은 청이 아버지만큼 시원해졌다.
1889년은 프랑스 파리 사람의 눈이 심 봉사처럼 번쩍 뜨인 해였다. 그해 개막된 만국박람회는 최신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백열전구로 야간개장을 실현했고, 화려한 분수 쇼로 구경꾼들을 불러 모았다. 박람회에 맞추어 완공된 에펠탑도, 수많은 가스등과 꼭대기의 아크등으로 밤하늘에 위용을 드러냈다.
같은 해 개장한 카바레 물랑루즈도 대단했다. 풍차날개에 색색의 전등을 매달아 행인들을 유혹했다. 댄스홀은 가스등과 전구로 휘황찬란했다. 술과 담배연기. 경쾌한 음악과 웃음소리. 거울에 반사되는 눈부신 조명. 자, 이제 구석에 앉아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는 난쟁이 화가를 만날 차례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무희와 가수들을 곧잘 그렸지. 포스터는 또 얼마나 훌륭했는데. 거리 곳곳에 경쟁적으로 나붙은 포스터 중에서, 툴루즈-로트렉의 ‘물랑루즈’는 단연 돋보였다. 세로길이 190㎝나 되는 이 석판화 포스터에는, 인기 댄서 ‘라 굴뤼’가 등장한다. 화면 중앙에 빨간 블라우스를 입은 라 굴뤼가 캉캉 춤을 추고 있다. 번쩍 들어 올린 다리 사이로 드러난 하얀 페티코트가 민망스럽다. 검은 실루엣의 관객 위로 노란 불빛이 흐른다.
지난 연말, 바로 그 파리 시내에서 한 대형광고사 소유의 600개 옥외광고판이 한꺼번에 바뀌는 일이 발생했다. 예술가단체 ‘브랜달리즘’이 파리기후변화협약 개막에 앞서 안티광고로 기습 교체했던 것. 19개국 80여 명의 작가가 제작한 포스터 중에는 임종 직전의 지구, 산소마스크를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기발한 작품이 많았다. 국제회의를 후원하면서 뒤로는 오염물질을 내놓는 기업의 위선을 풍자하는 포스터도 화젯거리. 에어프랑스의 속내는 이렇게 들통 난다. ‘기후변화에 맞서느냐고요? 물론 아니죠. 우린 항공사니까요.’ 다음은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가 들킨 폴크스바겐. ‘걸려서 미안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려다가.’
심학규의 개안은 공짜가 아니었다. 공양미 300석이 필요했다. 그걸 마련하려고 효심 지극한 딸이 희생한 거고. 그렇다면 환한 밤을 위해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공양미를 바쳐온 걸까. 좀 편하게 살려다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설마 나더러 인당수에 빠지라는 건 아니겠지?
김영해 <계명대 시각디자인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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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심봉사의 공양미](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2/20160215.01022080634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