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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카트를 밀 때마다 나는 그 남자를 떠올린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The Road)’의 주인공 ‘남자’는, 대재앙 이후 살아남은 사람이다. 머지않은 미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구는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 문명은 파괴되었고, 생명체들은 사라졌다. 생존자들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 사방에 도시의 잔해와 말라붙은 시체들이 널려있다. 길을 따라 남자는 걷는다. 어린 아들과 함께, 터벅터벅, 카트를 밀면서.
남자의 카트에는 아껴가며 먹을 통조림과 비스킷이 담겨있다. 담요와 옷가지도 있다. 유사시를 대비해 총도 올려놨다. 이처럼 남자에게 카트는 소중하다. 문득 내 카트를 내려다본다. 랩에 싸인 고기, 비닐봉지에 담긴 채소와 과일, 형형색색 포장용기에 담긴 간식거리들. 어느새 가득 찼네. 몇 가지만 살 생각이었는데. 정말 필요하기는 한 것들 맞나.
80년 전 미국의 광고기획자 어니스트 엘모 칼킨즈가 한 말이 생각난다. 시리얼을 팔 때 아침 식사가 아니라 아침 햇살 같은 분위기를 팔아라. 광고는 커피에 얹은 거품과 같은 것, 예술을 활용해 실상을 가리도록. 제품에 스타일만 바꿔 입혀라, 뒤처졌다는 느낌 때문에 새것을 사게 될지니.
‘인간을 위한 디자인’에서, 빅터 파파넥은 이렇게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비행태를 ‘크리넥스 문화’라고 명명했다. 그는 자동차업체들이 ‘자동차를 자주 교체할수록 멋지다’는 개념을 팔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뿐이랴. 멀쩡한 옷을 바꾸라고, 새 가전제품을 장만하라고, 끊임없이 설득 당하고 있지 않은가. 파파넥은 더 나아가, 사랑이나 결혼 같은 인류의 가치마저 휴지처럼 쓰고 버리는 것으로 여기는 세태를 우려한다.
오래 쓸 것을 디자인하는 것과 곧 버릴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폐기가 전제된 디자인은, 내구성과 지속성에 대한 고려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 그저께 바꾼 내 휴대폰. 이번만은 계약기간을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자꾸 멍청해지니 어쩌겠나, 버려야지. 이걸 어디 버린다? 쓰레기통 이후의 행로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거대한 집하장이 있겠지 뭐.
거대한 잿더미 속 한 남자. 카트를 밀고 있다. 거기에 달린 바퀴는, 문명이 동틀 때부터 인류와 함께하여 온 것이다. 내 카트에도 바퀴가 있다. 매끄럽게 잘 굴러간다. 예비 폐기물들이 효율적으로 진열된, 이 거대한 마트 안에서.
김영해 <계명대 시각디자인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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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카트 미는 남자](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2/20160222.01022080407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