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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주 <아트스페이스펄 큐레이터> |
며칠 전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움베르토 에코가 향년 8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였고, 역사학자나 미학자로서도 고전과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전문 지식을 갖추었던 그는 라틴어, 그리스어 등 10여개의 언어에 능통한 천재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는 비평과 소설, 수필 등 문학을 통해 대중에게 사색의 기쁨을 선사하는 예술가였다. 평소 에코의 저서를 즐겨 찾았던 열혈독자는 아니지만, 그의 별세 소식에 슬픔이 실려온다.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그 소설은 단번에 읽고 이해할 수 없어 몇 번의 도전을 하게 만든 책이다. 에코의 소설이 복잡하고 어렵지만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지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가벼운 상상의 경계를 넘어 사색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에코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로 ‘단순함에 질린 독자들의 도전의식’을 들었다.
요즘 우리는 가벼움 속에 노출되어 있다. 모든 정보는 인터넷 속에 존재하며,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쉽고 편리한 지식정보 습득이 습관이 되어 인문학이나 예술도 가볍게 재미를 가미해 대중과 친숙해져야 살아남는다.
미술계도 예외일 수 없다. 단적인 예로 ‘비평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얼마 전, 한 미술평론가의 기고에서 등단하길 원하는 신진 비평가들이 현저히 줄어든 현상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중에서 순수한 비평을 할 수 있는 매체가 없다는 것과 먹고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평론에 대한 원고료가 20년 전과 다를 바 없다고 하니 물가의 상승과 작품가격의 상승에 비해 터무니없는 상태이긴 하다. 게다가 방송매체에서는 시청률의 저하로 인해 양질의 문화프로그램이 속속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대구는 타 지역보다 인구대비 미술대학이 많은 곳이다. 크고 작은 미술단체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비평이나 기획을 하는 전문가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다.
창작이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비평도 활발해져야 한다. 그래야 현실도, 이상도 풍요롭다. 지적 풍요로 대중을 매혹시켰던 에코, 그의 몸은 떠났지만 그의 지성은 독자를 통해서 수없이 다시 태어난다. 배움을 실천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로 살고 싶어하는 사회에서 여럿이 공유할 수 있는 지적 풍요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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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지적 풍요를 소망한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2/20160223.01025080953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