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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해 <계명대 시각디자인과 강사> |
시계. 이게 문제였다. 아기염소가 늑대를 피해 숨었다는, 바로 그 시계 말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집안 구석구석 숨은 염소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꿀꺼덕했다는 늑대가, 유독 시계 속 막내만 못 찾을 건 뭔가. 아니, 그보다도 시계엔 어떻게 들어간 거지? 하도 이상해서, 벽시계를 몰래 뜯어도 봤다. 헉, 이 복잡한 부품 속에 끼여 있었단 말이야?
그러곤 한참을 잊고 살았다. 엄마가 되어 큰아이에게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를 읽어주었던 그날까지. 이야기는 절정으로 내닫고 있다. 문이 열리고 늑대가 들어온다. 혼비백산한 아기염소들이 이리저리 달아난다. 다음 페이지를 펼친 순간, 그래, 바로 이거였구나! 키 큰 괘종시계! 위쪽 부분에 둥근 시계 자판이 있고, 그 아래 여닫이문이 있는. 문 안에는 추와 진자가 있다. 막내 염소는 거기에 숨었던 거다.
그림책은 나같이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한 번에 압축해서 보여준다. 아기염소가 시계 속으로 뛰어 들어가거나, 시계 안에서 빼꼼히 내다보거나. 책마다 장면은 달라도, 이야기에 적합한 시계로 시각화한 점은 같다. 어릴 적 내 책에 이런 제대로 된 삽화가 있었더라면 애꿎은 우리 집 시계가 해체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이처럼 이미지의 힘은 강하다. 그림 한 장이 수십 줄의 글을 대신한다. 사진 한 장의 울림이 백 마디 말보다 클 수 있다. 수전 손택에 의하면, 사진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시간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선택된 순간을 얇은 사물로 간직한 채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다. 사진이 움직이는 영상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이유다.
이 한 장의 사진. 만삭의 일본군위안부가 있다. 맨발에 무거운 몸을 뒤로 기대고 있다. 부은 얼굴, 지친 기색. 찰나의 기록이지만, 그녀가 겪었을 고초를 유추할 수 있다. 중국 난징의 리지샹 위안소. 강제로 끌려가 그곳 2층 19호 좁은 방에 갇혀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했다. 지난 12월 사진 속 그녀가, 바로 그 자리에 개관한 위안부 기념관 앞의 조각상으로 거듭났다. 입체적 형상으로 재현된 피해자는 사진과는 또 다른 묵직한 슬픔과 분노를 전달한다.
동화 속 엄마염소는 영민했다. 늑대의 배를 갈라 새끼들을 끄집어냈다. 다시는 못 잡아먹도록 늑대 뱃속을 돌멩이로 채웠다. 중국정부는 난징대학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에 이어 일본군위안부 관련자료 등재를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늑대에게 잡아먹혔던 역사의 시계를 공유하는 우리. 우리는 중국 엄마염소만큼 잘 대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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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역사의 시계](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2/20160229.01022075119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