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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의 범어아트스트리트에서는 대구문화재단 주관으로 매주 토요일 ‘힐링아트타임’이라는 주제의 체험행사가 열리고 있다. 내가 소속된 단체는 초등학생 대상의 ‘나의 명작동화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데 유럽의 민담,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파랑새’ 등과 같은 익숙한 명작동화들을 새롭게 이해해 보고 느낀 점과 생각해 봐야 할 것들, 글쓰기의 방법론 등을 함께 해보고자 기획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읽은 동화를 되새기며 참여한 아이들이 토론을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 연작동화를 쓰기도 하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책을 읽고,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한 편의 동화를 만드는 작업이 그들에게는 생각 밖으로 재미가 있었던가 보다.
연작동화를 만들기 전에 정해야 하는 주제에서부터 아이들의 논쟁은 치열해진다. 조숙한 여자아이들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하고, 조금씩 과묵해져 가는 남자아이들은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한다. 어렵게 논의와 투표를 거쳐 주제를 정한 다음에도 문제는 남아있다. 동화의 주인공을 누구로 할 것인지의 문제. 여기까지만 어렵사리 서로의 양보와 이해를 얻어 정하고 나면 동화는 이미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수많은 이야기와 상상들이 마치 식물들의 잔뿌리처럼 얽혀서 뽑혀 나오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 친구와의 다툼이라든가 엄마의 잔소리, 그리고 감히 입 밖에도 내지 못했던 불순한 장래의 희망까지도 아이들은 동화 속 스토리에 녹여내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곧 그 주인공이 되어가는 것이다.
동화 속에서 마법사가 되어 꿈의 나라로 모험을 떠나는 아이들, 순수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서로 토론을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아이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언제부터 동화 같은 담백하면서도 솔직하고, 도전적인 내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다른 이에게 말도 못하고 지워가기 시작한 것일까. 그러곤 폭력적으로 어른이 되어버린 날들을 되새기며 조금 우울해지기도 한다. 마치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과 사랑하던 장미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정체성도 함께 잊어버린 것처럼…. 하지만 삶의 방향감각을 잠시 잃은 나에게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며 속삭인다. ‘우리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봐요’라고.
장미를 떠올리듯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를 기억하며 나는 오늘 낯익은 일상 속에서 한 편의 동화를 완성하기 위해 나의 별, 범어네거리 지하철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성호 <포스트콜로퀴엄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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