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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 들어선 후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가지만 여전히 나의 화두는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다. 며칠 전 나는 하버드 의대교수인 제롬 그루프먼이 지은 ‘닥터스 씽킹(How doctors think)’이라는 책을 다시 접했다. 저자는 의사들을 괴롭히는 오진의 짐은 현대 의학의 상업적 한계와 보험 체계라고 얘기하고 있다. 수많은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았지만 15년 동안 먹은 음식을 토하다가 죽음을 앞두게 된 한 환자에 대한 극적인 치료의 사례는 환자와 의사의 대화와 신뢰가 돌파구임을 보여줘 인상적이었다.
환자들은 의사가 자신을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보는지에 따라 놀라울 정도로 민감해진다. 오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최근 많은 의료과실, 분쟁이 기술적 실수가 아니라 의사의 사고 결함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환자에게 주는 아낌없는 사랑이 결국 환자를 치유할 수 있는 비법 중의 하나가 되는 셈이다.
나는 매일 환자를 볼 때마다 한 사람씩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료한다. 내 앞에 앉아있는 81세 할머니는 일주일 전만 해도 허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져 웃음을 잃고 계셨다. 지금은 미소를 띠면서 “나도 20대에는 보기 드물게 훤칠한 키에 허리 28인치의 미녀였다”고 말한다. 통장에는 5만원밖에 없지만, 홀로 키우는 손자가 전재산이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 이 할머니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의 사랑은 어떤 방법이어야 할까? 시한부인생을 살던 82세의 A할아버지. 항암치료마저 포기하며 치료를 받던 그 할아버지는 18년째 잘 살고계신다. 자신의 생일은 지병으로 생략을 한 지 18년째 접어들었지만 매년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난초향이 가득한 화분을 보낸다.
때로는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는 육신의 아픔 때문에 진료실은 고함소리와 난동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하지만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삶을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치료할 때마다 어릴 적 엄마가 나에게 하던 것처럼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려고 한다.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최선을 다하며 함께 기도하듯 치료한다.
20여 년 전 뉴욕의 한 소아 병원에 근무할 때가 생각난다. 병원 앞에 붙어있는 슬로건은 ‘Hug Me!(안아주세요)’였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린 많은 아픔, 사랑의 굶주림, 상처들을 가슴속에 품게 된다. 힘든 누군가에게 따스한 사랑의 포옹을 전해보면 어떨까. 이 봄 그저 살아있다는 기쁨만으로도 행복한 우리이기 때문에.
박언휘 <박언휘 종합내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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