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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언휘 <박언휘 종합내과원장> |
아직도 꽃샘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먼산에서 아롱거리던 아지랑이가 자동차 범퍼 앞까지 달려왔다. “와! 봄이다”하는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의 옷차림도 발걸음처럼 가벼워진다.
몇년 전 여자의사회에서 인문학 강의를 했다. 여러 선생님은 강의가 끝날 때까지 무척이나 흥미롭고 진지하게 듣고 계셨다. 의사가 인문학 강의를 접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뭘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따른 이 시대 진정한 의사의 상은 뭘까? 진료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던 ‘의학과 문학’이라는 통합 학회일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에게 수없이 물었다. 세상에는 많은 질병이 있다. 병이란 환자의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고, 누구든지 이 질환을 고치는 자가 바로 진정한 의료인이다.
응병시약(應病施藥)이란 병에 따라 각각 다른 처방과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이라는 매개체가 환자와 의사 간의 소통을 위한 징검다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소통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재산문제, 아파트의 층간소음 문제,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별은 물론이고, 특히 환자와 의사 사이에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진단 자체가 불가능할 때도 있다.
우리 옆집의 예쁜 H공주(?)는 여덟살이다. H는 “의사선생님 배가 아파요"라며 매번 울먹이지만, 상황은 매번 다르다. 배가 고플 때도, 변비가 생길 때도,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할 때도, 감기가 와서 열이 날 때도, 학교에 가기 싫을 때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을 때도. 때로는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을 때도, 싫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장난감을 사고 싶을 때도 H는 어김없이 배가 아프다. 사람들은 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고, 고통의 원인은 여러 좋지 못한 부정적인 생각이 모여서 형성된다. 이렇게 좋지 못하고 나쁜 번민이 바로 많은 병을 일으킨다는 것이 고집멸도(苦集滅道)이며, 의료계에서 얘기하는 ‘심신증’(psychosomatic disease)이다.
우리가 몸과 마음의 고통과 질병에서 벗어나려면 바로 소통해야 하고, 스트레스가 없어야 하며, 일상 생활에서 힐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화타가 말한 최고의 명의란 바로 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닐까. 배고픈 이에게 건네주는 빵 한 조각, 목마른 이의 갈증을 달래주는 생수 한 잔, 사랑이 고픈 이에게 전해주는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응병치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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