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옷으로 세계를 주름잡다…입는 사람 따라 고유의 실루엣
80년대 말 플리츠 디자인 연구
이전과 다른 과정으로 옷 제작
정사이즈의 2∼3배로 천 재단
완성된 형태에 주름잡는 방식
2016년 S/S컬렉션 무대에는 플리츠 디테일이 자주 등장하였다. 바네사 슈어드 쇼에는 플리츠 디테일을 이용한 블라우스가, 캐롤리나 헤레라에서는 플리츠 디테일 원피스를, 소니아 리키엘, 구찌컬렉션에서는 플리츠 디테일을 이용한 시스루 원피스를 선보이는 등 올 봄 플리츠 디테일의 유행을 알렸다. 여기서 플리츠 디테일이란 ‘아코디언 주름상자 모양과 같이 잘게 잡은 주름’을 말하며, 스커트나 블라우스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번 시즌 많은 디자이너들이 플리츠디테일을 활용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중에서 많은 사람이 플리츠 디테일의 대표 디자이너로 떠올리는 사람은 바로 ‘이세이 미야케’일 것이다. 이세이 미야케(1938~)는 도쿄, 파리, 런던, 뉴욕 등지에서 활약하며 패션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러나 실용적인 디자이너로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오트쿠튀르적 패션의 기능이나 미학의 관점에서 벗어나, 일본의 전통유산을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결합시킨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이어나가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가 전개하는 다양한 브랜드 중에서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브랜드이자 그를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플리츠 플리즈’가 있다. 이름에서부터 전해지듯 플리츠 디테일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의 의류와 소품을 전개하고 있다.
플리츠 테크닉은 이세이 미야케 이전에도 사용되어 왔다. 플리츠 디테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세기 초 마리아노 포르투니(1871~1949)에 의해 섬세한 실크 플리츠가 구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는 이전의 방식과는 다른 플리츠 디테일로, 혁신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종전에 사용한 방식은 소재를 재단하여 봉제되기 전 주름을 잡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나, 이세이 미야케는 그와는 반대로 의복을 정사이즈의 2배 반에서 3배 정도로 재단하고 조합한 후, 그 완성된 형태에 주름을 잡는 방식으로 제작과정을 새롭게 하였다. 즉 그 의복은 두 장의 종이 안에서 프레스에 압착되어 영구적인 주름이 생기게 된다.
심라인(바느질선) 없이 하나의 천으로 한 벌의 옷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작업방식은 패션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세이 미야케의 의복은 몸에 딱 맞게 재단하여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서양의 패션과는 다르게, 크고 느슨한 형태로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인체의 윤곽을 드러내게 하였다. 이는 기모노의 정신에 따른 것으로 신체와 의복 사이에 공간을 부여하여 인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인체의 존재를 새롭게 변형시키고 조형성을 극대화하였다.
이세이 미야케는 1980년대 말부터 플리츠를 사용한 디자인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조력자이자 소재 감독인 마키코 미나가와와 함께 일본 텍스타일 공장과 협업하여 매년 새로운 컬러와 톤을 더한 플리츠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1975년 화이트 리넨 크레이프로 플리츠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점차 면, 폴리에스테르, 트리코트 저지로 발전시켜나갔다. 또 단순한 형태의 디자인일지라도 소재에 주름잡기, 비틀기, 수축시키기 등 테크닉 변화를 통해 매년 발전하고 있다.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새로운 프린트 디자인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1996년 야수마사 모리무라, 노부요시 아라키, 팀 호킨슨, 카이 구오 치앙 4명의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플리츠 플리즈 라인의 프린트를 창조하는 것을 시작으로 게스트 아티스트 시리즈로 플리츠 플리즈에 신선한 변화를 추구하였다. 그는 주로 인체를 하나의 개념적 실체로 사용한 예술가들을 선정하였다. 작품 속의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 나체와 옷 입은 몸 등을 표현한 이질적인 이미지들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는 최근 2016년 S/S 라인을 출시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된 플리츠 디테일을 선보였다. ‘베이크드 스트레치(Baked Stretch)’라 불리는 이 소재는 제조 과정에서 빵처럼 구워진다하여 이같이 이름 지어졌다.
소재에 특수 글루를 입혀 베이킹 머신 안에 넣어두면, 빵이 오븐 안에서 구워지는 과정처럼 글루가 열로 인해 팽창하는데, 이로 인해 플리츠의 모양이 형성되고 베이크드 스트레치 디자인이 만들어진다. 베이크드 스트레치는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이너 요시유키 미야마에가 개발한 것으로 미야마에는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글루의 성질에 대해 익히게 되었고, 어느 정도 양의 글루를 어느 온도의 베이킹 머신에 사용해야 되는지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결과 3D효과를 가진 플리츠 패브릭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꽃과 풀, 나무를 연상시키는 ‘보태니컬 가든’을 주제로 디자인되었으며, 밝은 색상과 곡선을 사용하여 열대 지방 식물을 연상시킨다.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다. 주름 잡힌 원단은 가볍고, 여행용 트렁크에 접어 넣어도 구겨지지 않으며, 입체적 재단으로 활동성이 좋다. 이와 같은 이유로 스티브 잡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같은 세계적 유명인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나는 옷의 절반만 만든다. 사람들이 내 옷을 입고 움직였을 때에 비 로소 내 옷이 완성된다”고 말한 이세이 미야케의 철학처럼 옷과 내가 만들어내는 완성된 조형미를 한번 느껴보길 바란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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