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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용 <계명문화대 교수> |
예술은 아름답다. 예술은 멋있다. 예술은 특이하다. 또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에 대한 논의가 예술가뿐만 아니라 미학자나 철학자들을 통하여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어찌 보면 대중에게 예술이란 아주 간단한 것이다. 즉 예술은 보기 좋고, 훌륭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그들은 흔히 예술적이라고 말한다.
인도이지정(因陶以智政)이라 했다. 그릇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다는 옛말이다. 한 시대의 문화의 높낮이를 가늠하기에 그릇이 좋은 지표가 되는 셈이다. 문화사의 중심 학문인 미술사와 미학, 고고학의 주된 연구 대상이 당대의 그릇 양식이고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따라서 그릇다운 그릇을 쓰는 시대는 문화적이다.
자동차나 옷을 고를 때는 자신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정작 쓰임의 빈도가 가장 높은 그릇에 대해서는 격을 따져 선택하는 일을 번거롭게 여긴다. 겉은 그럴싸하나 속은 허술한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값이 질을 담보하지는 않으니 반드시 비쌀 필요가 없다. 문제는 값보다 안목이다. 일정한 수준의 문화 인식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그릇을 분별하려면 써봐야 한다. 좋은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와 그 가치를 아는 눈 밝은 수요층이 우리 시대의 생활문화를 영혼이 담긴 아름다운 그릇이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창조적 대상으로서 도예는 흙의 예술이다. 흙 속에 깊이 뿌리를 드리우고 대지 위에 꽃피운 또 하나의 결실, 그것은 곧 흙의 꽃이며 흙의 열매인 것이다. 당시대의 문화가 특수한 능력을 지닌 천재 예술가의 작품에 붙는 훈장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실천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의 도자문화는 특정한 전문가의 영역으로 미룰 일이 아니다. 우리 시대와 미래의 문화적 정체성을 올곧게 세우고 전통과의 끊임없는 소통으로 그 가치를 바르게 전파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관심과 작은 실천에 달려 있다고 본다.
조선시대 북학파 학자 박제가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전통문화를 대하는 오늘의 자세를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계승하되 시대의 옷으로 갈아입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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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예술도자의 생산과 소비(?)](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5/20160502.01022080236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