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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규 <한국미술협회 정책연구소장> |
이미 시대는 스마트 미디어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세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이젠 앱의 시대를 넘어 봇의 시대라 한다. 이러한 변혁의 시대 상황에 가장 기동력을 갖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묻혀있는 것이 미술에 있어서는 한국화 분야이다.
물론 한국화는 전통적으로 작가 자체가 소통을 위한 시스템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예술을 통한 스스로의 탐구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시대와 담을 쌓고 독백하듯 하는 작업만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기록하는 예술적 창의력을 발휘해왔다. 한국화는 이러한 시대적 맥락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본을 전제로 한 소통 구조에 관여하지 못하고 그 가치와 효용성이 현실에서 소외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대한 내부적 책임으로는, 스스로의 가치에 도취되어 현실 탓만 할 뿐 변화를 추구하는 데에 소홀히 하였다는 비난에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현대미술이 역사의식을 기반으로 현실을 열어간 상황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한국화단은 전통적으로 시대성과 현실이라는 가치를 조화롭게 표출한 그 정신을 살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식을 통해 내용을 보려는 오류를 범했다고 하겠다.
외부적인 요인 또한 만만치가 않다. 이들의 가치에 투자하고 지원하기보다는 곶감 빼먹듯 필요에 의한 수요만 챙기려고 했던 요인을 먼저 짚어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화가 가지는 정서는 자체 내에서 재생산되어 계승되고 활용된 것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도용하듯 활용만 당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다른 문화가 그러하듯이 한국화에 대해서도 스포츠처럼 순위화 하려고 하지 말고 다양한 발표의 장과 평가의 기준을 시대에 맞게 달리 두는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며 이는 교육에도 반영돼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는 요인의 근본은 한국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다. 장르에 합당한 이념으로 무장하고 작품으로 시대를 반영해 나아갈 때 외부적인 문제점들의 불합리에 다수가 눈뜨게 될 것이고 필요를 충족시키는 단서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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