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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영 <성악가> |
어느 시꺼먼 여름밤, 그 안에 붉고 빛나는 눈동자 둘. 그 눈동자는 여느 동물들처럼 휘판을 가져 빛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두려움과 서글픔을 먹고 자란 눈물을 머금어 빛이 나는 듯하다. 그 눈은 자신보다 더 시커먼 밤 앞에 눈에 띄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음에도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아 캑캑거리며 사력을 다해 낯선 이들을 향해 다가오지마라고 짖고 있다. 그 울음이 안쓰럽기만 하다. 얼마나 그렇게 어둠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던지 이 말 못하는 짐승은 그저 눈으로 모든 두려움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갈비뼈가 드러난 앙상한 몸. 축 늘어진 다리에 한 짝은 절기까지. 원래 갈색인 양 보이는 몸이지만 그 위에 파리, 하루살이, 이름 모를 벌레들까지 하나둘씩 제 집인 양 알을 까기까지 했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주인이 버렸단다. 버린 지 오래고 이미 이사를 갔는데, 그 아이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단다.
다음 날 낮. 고요한 시골길에 늘 그 시간에 차 소리만 들리면 어디서 그 마른 몸에 힘이 나는지 벌떡 일어나 달려가선 운전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힘 없이 돌아선다. 다시 그 자리.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 개는 주인이 자신을 버린 것을 알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자신을 버렸다는 것조차 모르고 늘 돌아오는 시간에 주인이 길을 잃어 버린 것이라 생각할 수도, 아니면 많은 일이 있어 늦어지나보다 생각 할 수도 있다.
유기(遺棄)! 그 주인이었던 사람은 개가 어렸을 적엔 많은 사랑을 주었으리라.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닐 터. 그들은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던 주인을 기억한다. 그리고 느끼고 다시 기다린다. 사람들보다 짧은 생을 살기에 자신의 인생 반 이상을 기다리며 또 기다린다.
지금도 아주 많은 동물이 어디선가 유기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반려를 버렸을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돌보았던 동물만 유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따뜻했던 마음과 감정도 유기한 것은 아닐까. 동물들뿐이 아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어서 우리들이 유기했던 수많은 양심, 감정, 따뜻한 마음들을 다시 찾아봐야 되지 않을까. 유기(有期)가 끝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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