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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용 <계명문화대 교수> |
우리 백자미의 아름다움은 분명 실용적인 공예라는 범주 속의 한계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그것에 구애받지 않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점에 있다. 아마 자연에 대한 철저한 순응만이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에 귀의하고자 모든 척도를 자연 그 자체에 두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조형적 결과물이 생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견실하고 절제된 공예의 기능은 최대한 반영하였지만 보다 정교하고 완벽하게 가공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의식적이고 공교한 작위가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인간성을 솔직하게 드러나도록 새길 수가 있었다. 외적으로는 약하고 투박하고 불명료해 보이기도 하지만 내적으로는 강인한 힘의 균형과 명증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의 바탕 위에 실학을 위시한 진보적 학자들의 영향으로 외래문화를 수용하여 생동적인 기형과 색채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즉 조선왕조의 검약사상이 빚어낸 단순 간결하고 강건한 외형을 지닌 절제된 아름다움에 시대의 여러 사상과 생활인의 다양한 욕구가 완숙한 조선의 기형을 이루는 백자의 조형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러한 형태와 문양의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게 되는 과정에서 조선 고유미를 창출하며 백자의 미적 특징인 강건미와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백자에 나타난 강건미는 자연주의적 심상이 백자의 곡선을 통해 유감 없이 발현된 결과이며, 선의 미를 추구하였다는 것은 백자가 생명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미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선의 미를 이루기 위해서는 형에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미적 특징은 백자의 선과 문양의 호응을 통한 긴장과 이완의 관계를 조화롭게 만들어냄으로써 백자의 강건미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었다.
우리의 백자는 고도의 정신적 수양을 비롯한 피나는 단련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무욕의 경지이며, 다시 그 같은 경지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얻을 때 비로소 머물 수 있는 강함과 위엄의 강건미를 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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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 백자의 강건미](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6/20160606.01022075909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