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의 사회경제학 <상>
지난 10일 경북도내 한 종합병원에서 환자의 가족이 입원 중인 환자를 부축한 채 걸어가고 있다. |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아픈 사람을 보살핀다는 건 그만큼 힘들다. 가족 중에 누구 하나라도 장기간 입원치료를 요하는 중증을 앓으면 온 가족이 매달려야 한다. 생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서민은 만만찮은 비용 때문에 간병인을 둘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결국 휴직을 하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고 직접 가족의 병구완에 나설 수밖에 없다. 좁은 병실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대소변 등 병 수발을 들어야 한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중산층도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이 때문에 간병하던 가족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간병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실상은 이처럼 참담하다. 가정파탄과 가계파탄의 주범으로도 지목되고 있는 간병. 실태와 제도, 대안 등을 상·하 2회에 걸쳐 짚어본다.
▶가족전체 생활고 극심
한달 간병비만 200만원대
78% 대부분 자녀에 의존
병구완 직접하려 생업 포기
▶보호자도 우울증·자살
매일 쪽잠 자며 병실 생활
영양·운동부족…건강위협
일부는 극단적 선택하기도
◆간병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
A씨(53)는 2010년부터 중증근무력증(근육이 마비되는 병)을 앓고 있는 남편을 간호해 왔다. 전신이 마비된 남편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으나 어려운 살림 때문에 간병인 고용은 꿈도 못 꾸었다. A씨는 생업을 포기하고 직접 남편 병간호에 뛰어들었다. 매달 들어가는 병원비는 부부가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충당하고, 1년에 몇 차례 받는 수술이나 특진은 친정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수년간 이어진 병간호에도 남편의 몸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인공호흡기로 목숨만 겨우 유지했다. 생계마저 힘들어진 A씨는 절망감에 빠졌다. 긴 간병으로 인해 집은 엉망진창이 됐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A씨는 남편과 동반자살을 기도했다. A씨가 남긴 짧은 유서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먼저 간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간호사에 의해 발견된 A씨는 위세척 등 응급처치로 살아났지만 남편은 숨졌다. 경찰은 지난 3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긴 병간호에 생활고에 까지 시달리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간병에 지친 나머지 부모나 배우자를 살해하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간병살인·자살’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수년간 이어지는 간병 생활은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극에 달하게 하고, 엄청난 경제적 고충을 가져 온다. 결국 간병을 하던 가족은 이를 버티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살인이나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간병살인·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연간 40~50건의 간병살인이 발생하면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예방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노인질병과 관련된 사건·사고의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간병 살인·자살을 막는 근본 대책은 사회가 가정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연간 간병비 2조원 이상 추정
지난달 초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를 지역의 한 병원에 입원시킨 강모씨(52)는 맞벌이 부부인 데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어 개인 간병인을 고용했다. 하지만 한 달 간병비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총 240만원의 간병비가 청구됐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입원비, 치료비, 각종 검진비 등 총 의료비는 120만원 정도였다. 식비, 교통비 등 기타 비용을 모두 합해도 간병비가 훨씬 비쌌다. 강씨는 “옆에서 직접 어머니를 챙겨드리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간병인을 고용했는데 하루이틀이면 모를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간병비가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싼 간병비가 입원환자는 물론 환자가족의 허리까지 짓누르고 있다. 하루 간병비는 7만~9만원으로 한 달이면 210만~270만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병증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 입원비나 치료비보다 간병비가 비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많다. 특히 간병비 때문에 형제간에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 5대 사망원인에 대한 사회경제적 비용 32조4천86억원 가운데 간병비 지출액은 1조2천975억원으로 약 4%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뇌혈관질환 간병비가 6천20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암 4천550억원, 당뇨병 1천265억원, 심장질환 955억원 등의 순이었다. 이 조사는 5대 사망원인에 대한 조사인 만큼 모든 질환을 포함하면 총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국내 노인인구가 늘면서 치매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환자 수는 2014년 기준 61만명이었으나, 지난해 64만명으로 늘어났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셈이다. 치매에 따른 고통을 고스란히 환자 가족이 떠안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 북부병원이 2012년 노인환자 1천289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노인 1인당 간병비용은 공동간병인을 이용할 경우 월 평균 75만원이 들어가고, 간병인 1명을 전담해 이용할 경우 월 평균 180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비는 78%가 자녀가 부담하고, 15%는 배우자가, 나머지 7%만 본인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간병하는 보호자 우울증 심각
간병비를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가정은 가족 중 누군가가 간병을 해야 한다. 이들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년을 병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생활해야 한다. 식사는 환자가 남긴 반찬이나 집에서 준비해 온 마른반찬에 전자레인지에 데운 즉석밥으로 때운다. 당연히 영양공급이 충분하지 않고 운동도 부족해 질병에 걸리기 쉽다.
시민단체 ‘보호자없는병원실현을위한연석회의’가 2012년 가족간병 경험이 있는 2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1.2%가 관절질환(허리통증, 무릎통증, 어깨통증 등), 호흡기감염 및 감기몸살 등 다양한 질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아무 질환도 경험하지 않았다고 답변한 사람은 18.8%에 불과했다.
간병으로 인한 보호자의 정신적 부담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국립암센터가 전국의 암환자 및 보호자 990쌍을 대상으로 설문을 시행한 결과, 보호자 82.2%가 우울증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38.1%는 불안증상을 느꼈다고 답했으며, 17.7%는 지난 1년간 자살충동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자살시도를 했던 암환자 보호자도 2.8%에 달했다.
부모의 간병 때문에 자녀가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아빠가 암과 같은 중증질환으로 입원하고 엄마가 아빠를 간병하면 자녀들은 스스로 밥을 해먹으며 학교에 다닌다. 간병기간 친정이나 시댁에 자녀를 맡기기도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정서적 장애를 겪기도 한다. 또 직업이 있는 보호자가 간병 때문에 실직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경북도내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간병이 다른 가족 구성원의 질병, 실직, 우울증 등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정부는 현재 시행 중인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확대해 보호자 없는 병동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글·사진=구미 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조규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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