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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핑계

2016-07-07
[문화산책] 핑계
이윤경 <성악가>

“살이 조금 붙었네.” 요즘 공연이 끝난 뒤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특히 오페라 사진을 받아보면 상대 남자가수보다도 후덕해 보일 때가 있어 공연사진 보는 것이 즐겁지 않다. 의자에 앉을 땐 힘을 줘도 들어가지 않는 배를 가리기 위해 가방을 전쟁 난민처럼 끌어안아야 하고, 양팔을 벌리고 고음을 낼 때마다 소리 내는 것도 힘들어 죽을 맛인데 팔뚝 살이 덜렁거리지 않는지 걱정해야 하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크게 마음먹고 간헐적 단식이며 파워워킹이며 1일1식도 해보았으나 야속하게도 몸은 이십대 아가씨 때와는 너무 달랐다. 신천강변에서 한 시간씩 팔을 휘두르며 걸어도 다리가 날씬해지지 않고, 한두 끼 굶어도 배가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스트레스로 몸이 붓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가 쑤시고 저릴 뿐 아니라 머리카락까지 빠지는 것 같았다. 아침저녁 체중계에 오르내리며 징징거리던 어느 날 드레스를 판매하는 외국 인터넷 사이트를 보던 중 맘에 드는 드레스 사진 밑으로 누군가의 영문 후기를 보게 되었다.

‘이 드레스는 완벽하게 아름답다. 나는 이 드레스와 함께 엘레강스한 동시에 섹시하다.’ 자신의 사진도 함께 올려놓았는데, 스스로 아름답고 섹시하다던 그녀는 내가 태어나서 본 가장 뚱뚱한 흑인이었다. 몸매가 머리·가슴·배로 나눠진 듯했다. 덧붙여 ‘나는 26사이즈인데 20이 넘는 큰 사이즈도 걱정 없이 주문하라’는 친절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사이트에서 제시한 미국사이즈 26의 허리둘레는 47.7인치, 무려 121㎝다.

나는 웃었다. 눈앞이 환해진다. 고작 표준체중보다 조금 더 나가는 내 몸이 어때서 내가 이렇게 나라 잃은 백성처럼 울상을 하고 있나. 물론 조금만 더 힘내서 먹으면 남편의 몸무게를 넘어설 날이 눈앞에 있지만 뭐 그쯤이야. 살아있는 동안은 행복하고 싶어 시작한 노래가 아닌가. TV에 나오는 나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턱이 두 개니 팔뚝 살이 출렁이니 어쩌니 해대는 말들이 그렇게 괴롭다면 노래를 그만두면 될 일이다. 나 자신을 예뻐하며 오늘 저녁밥을 조금 더 먹어도 될 핑계를 그녀가 찾아준 셈이다. 어느 날 소프라노 이윤경의 은퇴소식을 접하고 조금 이르다 생각된다면 ‘그녀가 좀 더 행복하게 먹고 싶어졌구나’라고 생각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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