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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허영

2016-07-28
[문화산책] 허영
이윤경 <성악가>

유학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아웃렛에서 어머니 가방을 하나 사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주위 한국 여학생에게 어떤 브랜드를 사면 좋을지 물었다. 그 학생은 슬쩍 아래위로 나를 훑어보는가 싶더니 혼잣말이라기엔 몹시 큰소리로 말했다. “명품도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부모 돈이 아닌 내가 번 돈으로 겁 없이 명품을 살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돈을 벌게 된 후 어느 날 일본 면세점에서 40% 세일을 해서 팔고 있는 브랜드 가방을 발견했고 난 덥석 집어들어 계산했다. 용돈 받아 쓰는 대학생들도 이런 가방 하나쯤 들고 다니는데 나 정도 되는 여자가 이 가방 들고 다닌다고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남미 공연을 다녀오다 미국에서 들른 면세점에서 무엇에 홀린 듯 가방 하나를 샀다. 핑크색 송아지 가죽의 예쁜 가방을 들고 나갈 때면 비단 구두를 신고 머리에 꽃이라도 하나 꽂아야 할 것 같았는데, 그 가방을 고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점원이 ‘한정판 신상’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브랜드 가방과 함께할 때 사람들은 내 가방을 확인했다.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의 가방을 계속 살폈고 신상은 무섭게 쏟아져 나왔다.

어느 날 TV에서 미국의 유명한 배우이자 사업가인 패리스 힐튼이 내가 갖고 있는 가방을 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봤다. 내가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가방에 장이라도 본 듯 이것저것 집어넣고…. 키우는 강아지에게 내 방보다 더 큰 복층 개집을 지어준 미국의 억만장자 상속녀가 들고 다니는 가방을 겁도 없이 산 거다. 수치스러움이 몰려왔다. 가끔씩 놀라울 정도로 충동적인 나는 당장 어떤 복장에도 이질적이지 않을까마는, 천 가방 하나를 사서 ‘1년 동안 같은 가방 들고 다니기’를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주는 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기분 탓일까. 이번에도 사람들은 내 가방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결과부터 이야기해서 나는 1년반 이상 ‘같은 가방 메기’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내 가방이 아닌 나를 보았다. 흥미롭게도 나 역시 남의 가방에 관심이 없어졌다. 안감이 삭아 부스러져 버려야했을 땐 왠지 모를 서운함도 들었다. 명품가방 든다고 인생이 명품이 되는 게 아니라고, 노래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던 아버지 말씀이 이제 와서 생각이 난다. 인간이 안 돼서 노래가 안 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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