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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뜬금없는 애국심

2016-08-04
[문화산책] 뜬금없는 애국심
이윤경 <성악가>

‘차표 한 장’에서 밝힌 대로 나는 내성적이고 낯을 가린다. 유학시절 외국인이 무서워 차표 한 장 사는데 한나절을 보내고 집에 와서도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었으니.

이런 내가 외국인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 계기가 있었다. 사건은 로마에서 가장 비싼 어학원에서 일어났다. 레벨테스트 후 나는 쓸데없이 한국에서 공부를 많이 해간 탓인지, 쓸데없이 발음만 좋았던 때문인지, 하여간에 쓸데없이 어려운 반으로 배정받았다. 얼굴이 넓적한 동양인은 나뿐이고 전부 하얗고 날씬한 유럽아이들뿐이었다.

내가 들어간 날 우리 반은 안락사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부끄러우면 죽을 것 같은 나는 한마디도 입을 떼지 못했다. 죽어라 공부를 했지만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들을 쓰는 그들의 어휘력을 따라가기는 힘들었다. 주눅이 들어가는 만큼 그들은 나를 무시하는 듯했고, 내 존재는 점점 작아졌다.

우리 반에는 소위 짱이라고 말하는 내 또래 독일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바이킹의 피가 섞여있다고 으스대던 큰 목소리의 거구였다. 독일여성은 정말 강하고 나는 전반적으로 독일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날 우리가 각자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에 그 아이는 갑자기 내게 큰소리로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너희 나라는 개고기 먹는다지? 난 강아지를 키우는데 네가 잡아 먹을까봐 못 데려 오겠어.” 아이들은 일제히 날 봤고 선생님은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극소수일 뿐, 넌 안 먹는다고 말해. 인식이 바뀌고 있어서 개고기는 앞으로 한국에서 없어질 거라고 설명해.’

나는 개고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개고기를 먹는 내 민족을 팔아넘길 생각은 없었다.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이 순간 개고기를 먹는 것보다 부끄러운 것은 문법을 틀리는 것이므로. “응. 한국 사람은 개고기를 먹어.” 그 아이의 입이 씰룩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할 때 나는 이어서 말했다. “우린 독일 여자도 먹어. 그리고 내가 먹어 본 것 중에서 독일여자가 제일 맛이 없었어.” 더 강한 한 방이 필요했으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이 풀리지 않았던 그때 내 콧구멍은 벌름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다는 이승복 어린이가 생각나며, 왠지 민족을 지켜낸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다음 달 나는 반을 옮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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