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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 사람들에게 여름이란 참으로 특별한 이벤트다. 어느 나라 어떤 문화권이든 남쪽지방 출신들은 고향의 열기에 대한 기억을 자랑하고 일종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사계절 중 제일 자연에 혹독하게 단련되고 그 기억이 새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고갱과 고흐가 탐미하던 아를르의 작열하는 태양, 남쪽의 빛은 세기말의 화가들에게 구원인 동시에 숙명의 과제였다. 남프랑스를 처음 여행하는 여행자의 눈에 인상주의의 색과 빛은 화가들의 창조물이 아닌 그 지방의 빛과 공기 그대로였다. 정신을 혼미하게 할 만큼 밝다가도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숨으면 공기는 놀랄 만큼 연하고 부드러웠다. 그 아래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밭에는 밀과 해바라기와 포도 넝쿨이 끝없이 자라고 있었다. 깊은 산중에 시간에 풍화한 회색 화강암의 둥그러지고 투박한 질감에 익숙한 우리 눈에 밀가루로 빚은 듯한 석회가루 미장의 건물 풍경은 일사병에 어지러울 만큼 모든 것이 넘치게 밝고 빛이 났다. 납이 많이 들어 특유의 흰빛을 내뿜는 인상주의의 캔버스처럼 프랑스의 화가들은 태양 빛을 받아 빛이 나는 모든 것을 화면에 표현하려 노력했다.
내가 나고 자란 대구의 태양은 동정도 용서도 없다. 특유의 내리꽂히는 빛과 열기! 도망칠 곳 없는 비난을 몇 시간째 쏟아부으면 화가 단단히 난 땅은 그것을 되갚아 주기라도 하려는 듯 받은 열기를 고스란히 습기와 버무려 토하기 시작한다. 땀은 비 오듯 흐르다가 결국은 눈물까지 고이는 지경이 되어 버린다. 머리끝까지 김이 펄펄 나는 바다와 같은 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일 수도 없다. 그 열기, 태양, 그리고 온몸을 휘감는 뜨겁고 습한 공기. 지긋지긋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고향을 떠나 이방을 떠도는 이가 되어서도 그것은 평생 몸 전체로 기억하는 그의 태생이고 아이덴티티다.
땀 흘려 일한 뒤 문득 주저앉아 내 몸에서 올라오는 땀의 습기와 열기를 느낄 때면 언제나 나는 여름의 대구를 생각한다. 온몸을 적실 만큼 땀을 흘리고 나면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문득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한국의 화가들은 이러한 우리의 여름의 열기를 닮은 몸의 노동을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땀을 튀기며 쉼 없이 선을 긋는 박서보의 묘법, 한지 반죽을 치대고 또 치대는 정창섭의 캔버스,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 앞으로 짜내는 하종현의 노동. 이열치열이라고 하던가. 한국의 1960~70년대 미술은 이러한 몸의 노동이 땀과 함께 물질 위에 기억되고 쌓이는 작업인 것이다.이지원 <피앤씨 갤러리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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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화가의 여름](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8/20160805.0101707521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