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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경훈 <연극인> |
아침에 눈 뜨는 기분이 평소와 다를 때가 있다. 매일 매일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내게 특별한 날들이다. 그건 배우 권경훈의 하루가 아닌 연극 선생님 권경훈의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공연 무대에 서는 배우가 아닌 연극 선생님으로 어르신들을 만나고 있다.
이때 나의 하루는 화려한 조명과 무대가 아닌 작은 시골 마을의 경로당에서 몇 겹의 인생 훈장을 달고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의 선생님으로 시작된다. 그날이 오면 어떤 큰 공연이 있는 날보다 더 가슴이 설레고 흐뭇함을 느낀다. 어르신들은 나와 만날 시간이 되면 연극을 배운다기보다는 그냥 자신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러 온 선생님을 만난다는 조심스러움과 반가움을 가득 담아서 나를 맞이해 주곤 한다. 땀을 흘리며 버스를 타고 부랴부랴 달려온 내게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어서 오라 손짓하며 선풍기를 기꺼이 내게 양보하신다. 그리고 나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를 하신다. 연극을 가르쳐줘서 고마운 걸까. 오히려 내가 어르신들에게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있는데….
인생은 연극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아니 먼저 살아오신 그분들에게는 연극보다 더 연극같은 일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일들을 이겨내고 치러내셨을지…. 지금 우리가 무대에 올리는 작품들은 모두 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거기다 색다른 옷을 입히고 살을 붙이고 몇 마디 토를 달아 줬을 뿐이다.
내 손 잡아주며 “우리 선생님이 고생이 많다” “아무것도 모르는 늙은이들 가르치느라 수고한다”고 말해줄 때 몇 년째 병원에 계신 모친이 생각나 왠지 모를 뭉클함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내가 연극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만남은 없었을 것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연극인의 삶이지만 어르신들과 만나는 이 시간들이 내게는 긴 폭염 속의 한 줄기 소나기처럼 반갑고도 행복한 일상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밤도 자고 일어나면 우리 어머니 같은 제자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미소가 지어진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고, 비록 몸은 지치고 힘들어도 아들 같은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여줄 때 나는 또 하나의 행복을 느낀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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