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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안 <작가·배우> |
새하얀 색만큼 사치스러운 색이 또 있을까. 하얀색은 순수라는 미명 아래 고집스레 자신만을 뽐낸다. 동양의 오방색은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를 뜻하는 네 개의 방위, 이것은 서양의 뉴스(news)의 약자가 동서남북인 것과 묘하게 정통하지만 동양에는 정신과 영혼을 일컫는 황색이 중심에 하나 더 있다. 이 오색찬란한 다섯 가지 색이 오방색의 기본이며 검정은 모든 색을 끌어안은 색이 아닐까 한다.
조선시대 무인과 예인들은 신분과 가문을 등에 업어야 필경(筆耕)의 획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만큼 문턱이 높았고 이미 남성 중심 체계가 확립된 상태라 재주는 신분을 뛰어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중국의 대표 연극인 경극, 기예와 무용을 중심으로 했던 일본의 가부키, 한국의 마당놀이까지. 세계무대 어디에도 여성에게 기회는 박탈, 배척은 기정사실이었다. 여성이 예기로 집안의 종속물에 안주해야만 했던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혹자는 예술가를 ‘여류’로 소분해 흡사 남성의 갈비뼈에서 파생된 신생종족으로 규정짓는 것처럼 창작자와 여성을 구분해 분리수거 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할 때가 있다. 하지만 뭐 어쩌랴. 여류로 분류된, 어쩌면 지금껏 무한정 금기시되어온 여성이라는 단일 종족이 지닌 특별한 감각에 대한 역설적 찬양이라고 귀결점을 찍는 수밖에.
조금 억지스러울진 몰라도 우리가 여성 예술가를 옹호해야 할 이유는 이들만이 특별한 능력, 좁고 깊게 파고드는 섬세한 예술적 감각이 내포되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선시대 무인과 예인들이 필경의 담을 무력으로 높이 쌓아온 이유는 이 세립미진한 여성의 감각을 선 인지하고 후 차단해 여성의 진격 무대를 무력화해온 것 때문이 아닌가 하고 달리 생각해본다. 우리 여류들은 창작의 교정 안에서 여성만이 지닌 세포적인 감각과 육감의 표상들을 끌어모아 예술로 승화시킬 노력을 멈출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암탉들이여, 집 밖에서 울어라!
여류, 그 특별함이 주는 황홀한 애칭은 나를 더욱 분발하게 한다. 유리벽이 아무리 높은들 스스로 검열할 필요가 있겠는가. 여우 같은 여류, 예인들이 손을 잡고 진격태세를 갖추기라도 하는 날엔 맥도 못 추리고 기성무대가 전멸할지 누가 아는가. 사회를 향해 문턱만큼 낮은 담도 쌓지 말고 내공에 전념할 필요가 있겠다. 여자라는 이름으로 첨자 하나가 더 붙은 나는 여류 작가다. 그 애칭을 특별함으로 간주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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