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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진환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홍보부장> |
“가을에는 경주를 걸어보자”라고 하면 “지진이 일어난 지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반문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창졸지간(倉卒之間) 발생한 천재지변으로 인해 경주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경주는 누구나 한 번쯤 천년의 역사를 따라 걷고 싶은 곳이다. 삼릉 가는 길, 신문왕 호국행차길, 천년 실크로드 화랑길 등 경주엔 걷기 좋은 길이 많다. 월정교, 나정, 대릉원, 첨성대, 반월성(석빙고), 안압지, 분황사, 황룡사지, 포석정 등 천년 왕국 신라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 길을 팝 그룹 아바의 노래 ‘안단테’의 가사처럼 걸어보자.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Take your time, make it slow) /안단테, 안단테(Andante, Andante).
등뼈가 하나뿐인 쌍둥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등을 맞댄 그 길을 걸으면 수많은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화랑들의 용맹함과 거대한 무덤에 깃든 왕들의 전설. 밤이 되면 베일을 벗는 안압지와 보문호반의 변신은 무죄다. 운치 있는 전각에 빛이 더해지고, 아름다운 불빛으로 요요한 야경과 그 모습을 품은 물결에 방문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줘버린다.
봉황대 뮤직 스퀘어와 천년 야행, 달빛걷기 등 다양한 이벤트는 경주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선물. 국내 인기 뮤지션의 선율이 밤을 적시고, 가족, 연인과 함께 걷는 길에 추억이 쌓이면 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즐거움을 주는 경주는 걷고, 보고, 듣는 즐거움으로 기쁨에 기쁨이 더해진다.
경주는 매년 1천여만명이 찾는 문화관광도시다.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 수많은 문화재와 유물, 유적이 산재한 ‘지붕 없는 박물관’을 만끽하러 오는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편안한 풍경 속에 자연과 역사, 사람들의 삶이 오랜 전설과 설화, 이야기와 엮어지며 천년을 이어온 공간을 즐긴다.
퇴근길 보문호수를 따라 걸으며 생각했다. 이 땅에 지진은 또 올지도 모르지만 그 이유만으로 경주가 외면받아선 안 된다. 안전한 경주를 만들어 천년 보고(寶庫), 세계인이 주목하는 관광문화도시라는 위상엔 지진이 없어야 한다. 경주무진(慶州無震)이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걷기 위해 오는 도시가 돼야 한다. 이제부터 그것은 경주를 넘어 대한민국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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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가을, 경주 걷기](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9/20160927.01025075313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