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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안 <작가·배우> |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황국신민 정신을 세뇌시키기 위해 조선의 소학교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이 된 후에도 우리나라에 뿌리 깊은 일제의 잔재는 생활 저변에 남아있는 듯싶다. 1995년 8월 국민학교는 비로소 초등학교로 개명됐다. 나는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지금의 초등학교에서 명예롭게(?) 졸업한 1세대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30∼40대는 격변하는 시대의 소용돌이 안에서 혼란과 안착이 상충하는 회기에 동감하며 자라온 세대가 아닌가 싶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대중가요는 트로트에서 힙합으로, 판이한 변화들에 안착하기 위해 얼마나 큰 혼란과 과거를 향한 애착에 귀속돼야 했던가. 그래서인지 지금의 ‘꽃중년’들은 변화에 꽤 익숙한 듯하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사랑을 예로 들면, 정신적인 ‘플라토닉 러브’보다 육체적 사랑을 갈망하는 ‘플라스틱 러브’를 애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전자레인지 전원 버튼 한 번이면 데울 수 있을 것만 같은 플라스틱 러브. 물론 후자는 내 취향이 아니라 추천해주고 싶진 않지만 사랑의 다양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방적인 강압이 아니라면 여성의 성을 무기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며 여성을 남성과 수평이 아닌 수직선에 두고 스스로를 하위에 두려는 저급한 생각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밥으로 사랑을 연명하던 때가 있었다. 오리지널 ‘갱상도’분인 할머니는 일본어보다 낯선 한국말을 구사하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중 ‘가르~늦게’ 하시던 말이 떠오르는데, 이것은 모든 것에는 알맞은 때가 있음이 할머니의 세월 속에 켜켜이 점철된 시대의 철학이 가볍게 묻어난 단어가 아니었나 싶다.
내 가슴에서 자라는 30년산 과실나무는 꿈의 열매가 야무지다. 비옥한 땅 위에서 태풍 몇 개, 비바람 몇 개, 가지 끝에 꽃이 저물고 붉게 영근 수확물이 당도 높은 영양가를 선사해 주리라 믿는다. 그러려면 줄기는 나이테를 늘리고 뿌리는 더욱 깊고 단단해져야 한다. 사과 전화기를 만든 잡스 형님 가라사대, ‘가슴이 시키는 일을 따르라’ 했으니. 조금 늦어도 시대와 문화는 언젠가 변화를 찾을 것이고 새로운 변화가 도래한다 해도 전통의 가치가 전락되거나 퇴색돼서는 안 될 것이다. 때가 되면 부는 하늬바람처럼, 누구나 가슴 안에 숨겨둔 계절에는 제철에 맞는 꽃이 필 것이고 그것이 곧 자연의 이치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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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하늬바람처럼](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10/20161005.01023081201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