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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 <수성아트피아 기획홍보팀장> |
올해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다. 정확한 통계자료가 있는 건 아니지만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햄릿’ 다음으로 많이 공연되는 작품은 ‘리어왕’일 것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권력을 내준 처량한 임금님과 사악한 두 언니, 그리고 착한 막내의 구도가 관객과 독자들의 기억 속엔 ‘맥베스’나 ‘오셀로’보다는 선명하게 남는다.
비극의 주인공인 리어왕 곁에는 늘 따라다니는 광대가 있다. 이른바 궁정광대라고 하는 이 광대는 왕 옆에서 온갖 재롱으로 왕을 즐겁게 하는 것이 임무다. 그런데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광대가 하는 농지거리가 늘 왕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촌철살인으로 왕이 범한 실책의 정곡을 찌르기도 한다. 직언을 했던 켄트 백작은 쫓겨났다가 신분을 숨기고서야 겨우 리어의 곁으로 돌아오는데, 이 광대는 미우나 고우나 폭풍우 치는 황야에서도 광인이 된 리어 옆에 착 들러붙어 입바른 소리를 해댄다.
400년 전의 서양에 이런 광대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전통예술에서도 재밌는 광대를 만날 수 있다. 탈춤을 보면 초랭이나 이매가 지체와 학식을 자랑하는 양반과 선비를 골려주고, 마을 사람을 착취하는 관리의 횡포를 풍자하기도 한다. 역사적 위인의 직언은 귀양과 사약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광대가 보여주는 풍자와 해학은 희극으로 영원히 남아 힘 없는 백성의 해방구가 되어왔다.
헌데 요즘은 광대가 맘 편하게 힘 있는 자를 풍자하고 조롱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권력자를 풍자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서둘러 개편의 대상이 되고 운 없는 코미디언은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 어지러운 세상을 소재로 삼는 예술가들은 이른바 리스트에 올랐는지를 걱정해야 한다. 한술 더 떠서 여의도에 계신 높은 분들이 연일 밥 갖고 코미디를 시전하며 코미디언들의 밥그릇을 뺏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분들이 전해주는 큰 웃음 뒤에 남는 것은 허무와 씁쓸함뿐이다.
인간은 웃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하는 건 웃음이 없는 시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2월 작고한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이 중세 신학자들이 숨겨놓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 희극편에 얽힌 이야기라는 건 이제 책을 안 읽은 많은 사람도 알고 있다.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달려들지 말고 광대들이 마음껏 웃길 수 있게 해주자. 풍자와 해학은 세상을 밝고 건강하게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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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광대가 필요한 시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10/20161013.01023075724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