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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주 <극단 동성로 대표> |
몇 해 전 남자 선배 배우가 무대에서 나체 상태로 10분 이상을 연기한 공연이 있었다. 당시 그는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나체 상태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연출의 의견에 반박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극의 사건과 흐름상 그 요구가 타당하고 본인도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연 당일 분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는 “오십을 앞둔 나이에 내가 참…”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막이 오르고 무대에 선 그는 벌거벗은 자신을 잊고 주어진 역할로 빠져들었다. 관객들도 어느새 근육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그의 늘어진 살과 평범한 몸에 익숙해져갔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인사를 하면서 그는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의 전라 행위는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관객이 의식할 사이도 없이 무대 위 인물의 상황과 심리적 갈등을 보여줘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뇌를 충분히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 의도는 표현되지 않고 행위만 있었다면 꽤나 불편함을 주거나 외설이라는 평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포착하지 못한 진실을 보여줘 삶을 관조하도록 한다. 사실주의 연극에서는 극 속에서 행위에 따르는 의도를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제거된 일상’이라 한다. 관객은 복제된 일상의 행위를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통해 걸러진, 늘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반복되는 것들에 대한 의도를 전달받아 각자의 삶과 비교하고 이를 흡수한다.
우리는 격정적 상황에 놓이거나 극 속에서만 일어날 법한 사건이 일상에서 발생했을 때 ‘극적’이라고 말한다. 무대 위 극적 상황도 우리네 삶을 모방해 그려낸 것이기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기막힌 일들쯤이야 무대 위 삶보다 더 극단적인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최근 정치·사회문제와 현상들은 우리를 적잖은 박탈감과 분노에 빠지게 했다. 시작이야 어찌됐든 불순한 의도가 정당한 행위를 잠식해버렸다. 지난 주말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촛불행진을 봤다면 파편처럼 흩어져 망각됐던 일상의 진실을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의미가 되고 싶어하는 것에 의도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되어줄 수 없듯 우리의 행위에도 반드시 합당한 의도가 있어야 가치 있는 삶 가까이 설 수 있을 것이다. 거짓과 위선이 난무한 일상에서 불필요함이 제거된 진실된 극적인 삶, 이 시대 우리가 무대의 주인이 되어 살기 위한 지침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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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삶, 행위와 의도](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11/20161116.01031073817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