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정호 <국악작곡가> |
우리 모두는 삶의 끝에 언젠간 죽음이 오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죽음을 생각하면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아집니다. 가령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언제 죽을 것인가. 죽음을 맞이할 때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내가 죽은 뒤의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 끝은 무엇일까. 이런 여러 가지의 물음에 확실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런 질문의 마지막은 늘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그러면 이내 곧 그 생각을 떨쳐 버리려 온갖 다른 잡생각들을 제 머리 속으로 집어넣어 버립니다.
한참 그런 생각을 자주 하던 시기에 읽게 된 책이 있습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라는 책인데, 그 속엔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외로움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 외로움은 모든 것이 끝나고 혼자 남겨짐을 뜻하는데,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인다면 두려움 또한 사라진다고 합니다. 또한 두려움을 떨쳐내며 어제·오늘·내일을 떠나 매순간의 죽음으로 새로움을 만들며, 또 시간의 지속성을 가진 ‘사랑’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에 가깝게 다가간다고 하는 등 여러 생각을 갖게 한 이 책은 저의 작품인 국악관현악 ‘진혼’을 쓸 때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로 삶과 죽음을 표현하게 하였습니다.
“삶의 모든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아주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 슬픔, 그리고 죽음이다. 시간을 이해하고, 슬픔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며, 죽음과 함께 하는 것 - 이것들 모두 맑고 투명한 사랑을 요구한다.” ‘삶과 죽음에 대하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진도 앞바다에 져버린 많은 꽃들을 위해 쓴 국악관현악 ‘진혼’의 곡해설에 인용된 구절입니다. 이 곡은 무속음악 ‘진도 씻김굿’을 모티브로 하여 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였는데, 여기서 나오는 ‘씻김’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의식입니다. 하지만 그 행위의 궁극적 의미는 살아서 남아 있는 사람들 마음의 치유도 포함된 것이며, 이는 곧 ‘삶에 대한 위로’인 것입니다.
삶과 죽음. 이 두 가지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슬픔과 두려움이 생기지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비로소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맑고 투명한 사랑과 함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산책] 삶과 죽음](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11/20161117.01021075141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