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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거안사위(居安思危)

2016-12-07
[문화산책] 거안사위(居安思危)
최영주 <극단 동성로 대표>

“손님, 들어가도 될께라우?” 외딴 사창가에 팔려 온 지 20년이 된 늙은 창녀는 오랜만에 맞는 손님이 반갑다. 사창가에 올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손님은 술을 청하고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사창가로 팔려온 어린 시절부터 사창가에서 만난 아픈 상처까지 실타래 풀 듯 이야기를 해나간다.

2년 전 ‘늙은 창녀의 노래’라는 1인극을 공연했다. 연기 인생 20년 만에 처음으로 하는 모노드라마. 과거 양희경 선생님의 공연으로 유명했던 작품이기에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무척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배우 중 평생 1인극 한 번 못해보고 연극인생을 마치는 배우가 더 많다지 않았는가. 용기를 낸 나는 연습을 시작하면서 외로운 싸움을 해나갔다. 이 작품은 한 번 등장하면 퇴장이나 암전 없이 1시간30분 동안 연기가 지속된다. 상대 배우 없이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독백이어서 대사를 잊어버리면 그다음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체력 소모에 대한 어려움은 덤이다.

첫 공연을 마치고 이듬해 3주간 앙코르 공연을 했다. 그해 봄, 대명동로드페스티벌 참가작으로 반년 조금 넘게 극 중 늙은 창녀로 지내다 마침내 마지막 공연일이 됐다. 아쉬움과 동시에 그날따라 몸 상태가 하늘을 날아갈 듯 좋았던 나는 “오늘이 최고의 공연이 될 거야”라고 연출에게 호언장담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정확히 10분. 갑자기 대사가 생각나질 않았고, 애드리브를 하며 머릿속을 탐색했다. 그 짧은 몇 초가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침내 나는 자연스러운 퇴장으로 위장해 무대 뒤 분장실로 들어갔다. 빛의 속도로 전등을 켜고 대본을 찾아 잊어버린 부분을 확인한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무대에 올랐다. 실수를 무마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번 호흡을 놓치고 나니 남은 1시간2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고 공연은 막바지로 달려갔다.

퇴장을 하려고 무대를 나서는 순간, 무대 뒤쪽이 대낮처럼 환했다. 아뿔사! 잊어버린 대사를 확인하러 갔다 오면서 분장실 등을 환하게 켜두고 문은 활짝 열어 둔 채 나왔던 것이다. 덕분에 엔딩 장면에서 아름답게 그려져야 할 창문 사이의 달빛은 분장실에서 새어 나온 빛 때문에 의도대로 표현되지 못했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심정은 다시 울컥 올라왔다. 이를 계기로 나는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사자성어를 다시 생각했다. 아무리 마음이 편안하고 자신감이 넘쳐도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곤경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 자세는 넘쳐도 되지 않겠는가! 이 같은 다짐으로 난 오늘도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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