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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호 <국악작곡가> |
예전에 신라향가를 주제로 한 곡을 의뢰받았습니다. 이에 향가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이임수님의 ‘향가와 서라벌 기행’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속에 있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 중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라시대 대표적 미인이며 당대 왕실을 주름잡던 미실과 그 미실이 사랑한 화랑 사다함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화랑세기’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는데 몇 해 전에 방영된 드라마 ‘선덕여왕’이 이 책을 주 소재로 삼은 바 있습니다.
1989년과 1995년에 필사본으로 발견된 ‘화랑세기’는 신라시대 화랑의 대표인 역대 풍월주들의 전기를 기록한 것으로, 1989년 발견된 화랑세기(32쪽)는 1대부터 15대 풍월주 김유신까지의 기록을 발췌한 것이며, 1995년에 발견된 것(162쪽)은 504년부터 681년까지 32명의 풍월주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책의 원본은 681년에서 687년 사이에 김대문이란 사람이 저술한 것인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1930~40년대 일본 궁내성 도서료에 근무하던 박창화라는 분에 의해 필사된 책만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필사본이 진짜 ‘화랑세기’를 베낀 것인지, 박창화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그 진위 여부를 두고 역사학자들 사이에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 중 특히 진위 여부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향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15~16세의 미실이 사랑하는 이 사다함을 위해 쓴 ‘풍랑가(風浪歌)’입니다. ‘송출정가(送出征歌)’라고도 합니다.
561년 가야와의 전쟁에 5대 풍월주 사다함이 선봉에 나서 출정하게 되었는데, 그때 미실이 그가 무사히 전쟁에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부른 노래입니다. ‘화랑세기’가 위작이 아니라면 ‘풍랑가’는 전해오는 신라향가 중 가장 오래된 노래가 된다고 합니다.
‘바람이 분다고 해도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해도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 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려뇨.’
하지만 사다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그사이 사랑하던 미실은 다시 궁으로 불려가 세종전군의 부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사다함은 ‘청조가(靑鳥歌)’를 지어서 떠나버린 미실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파랑새에 비유하고 죽어서도 그녀를 천년만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결국 그즈음 절친한 친구 무관랑의 죽음 소식과 함께 슬픔을 못 이기고 자리에 누운 지 7일 만에 죽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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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미실의 ‘풍랑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12/20161208.01024075941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