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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Y인터뷰] ‘민주주의를 밝힌 촛불집회’ 3인의 평범한 주역들

2016-12-17

“정치는 모른다 소속 정당도 없다…다만 떳떳한 시민이 되고 싶었을 뿐”

지난달 5일부터 주말마다 전국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자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도 수많은 ‘박근혜 퇴진 촛불’이 동네 곳곳에 켜지고 있다. 대구는 박 대통령 지지세가 워낙 강해 그를 비판하는 집회가 거의 불가능했던 곳이었다. 국민들이 든 촛불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단순히 대통령을 바꾸는 문제를 넘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훼손된 민주주의와 사회구조를 온전히 시민의 힘으로 다시 세워야한다는 ‘시민혁명’의 기운이 분출된 것이다. 대구 곳곳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촛불의 주역들을 만났다.

장영훈 ‘땅과 사람이야기’ 사무국장

[Y인터뷰] ‘민주주의를 밝힌 촛불집회’ 3인의 평범한 주역들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대통령 행태가 무책임해 촛불 들어
與 지지 아버지 태도도 변화시켰죠


“300명가량 모였지만 제 눈엔 3만명으로 보였어요.”

지난 15일 대구시 동구 율하동 로컬푸드매장 ‘땅과 사람이야기’에서 만난 장영훈씨(34)에게 동네 촛불집회 참석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장씨는 2012년 동구 안심지역 주민들이 만든 마을기업 안심협동조합의 사무국장이다. 그는 지난달 12일 오후 6시 대구 동구 율하동 반계공원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정당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시민사회단체 활동도 하지 않는다는 장씨가 촛불을 들게 된 계기는 ‘분노’였다. “마을기업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의 행태가 너무 무책임하잖아요.”

한 달여 전 이 동네에서 열린 촛불집회의 이름은 ‘박근혜 수준 이하야, 안심마을 동네 촌 궐기’다. 서울 광화문 등에서 열리는 세 번째 대규모 촛불집회에 가지 못하는 동네 주민 몇 명이 모여 인근 공원에서 촛불집회를 열자는 얘기가 번져 집회 당일 주민 300여 명이 모였다. 사람들이 몰리는 대구 중구 동성로 같은 도심이 아니라 동네에서 촛불집회가 열린 것은 지역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장씨가 예상한 집회 참석 인원은 20~30명. 하지만 오후 5시쯤부터 한둘씩 모이더니 어느새 공원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주민들은 촛불집회 뒤 동네를 돌며 ‘박근혜 하야하라’고 외쳤다.

장씨는 “안심협동조합에는 정당 관계자나 시민단체 활동가도 계신다. 이분들 얼굴은 알아보는데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분들이었다”고 말했다.

동네에서 촛불을 밝힌 이후 장씨를 포함한 안심지역 주민들은 대구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집회 참석자 수를 놓고 경찰과 주최 측의 추산에 큰 차이가 나자, 주최 측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집회에 참석한 동네 사람들은 안심협동조합 카톡단체방에 집회 참석을 알린다고 한다.

이번 촛불집회가 이끌어낸 변화에서 장씨에게 가장 와 닿는 부분은 새누리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해 온 ‘아버지’의 태도가 바뀐 것이다. “정치 성향이 달라서인지 아버지와는 정치적 이슈로 제대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아버진 항상 ‘넌 아직 어려서 잘 몰라’ ‘한번 살아보면 보수가 맞다는 걸 느낄 거야’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 사태가 터지고 나선 아버지가 더 이상 새누리당을 감싸지 않더라고요. 심각하다는 걸 공감하는 것 같아요.”


정현정 대구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

[Y인터뷰] ‘민주주의를 밝힌 촛불집회’ 3인의 평범한 주역들
사진=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그동안 우리사회를 뒤덮은 건 절망
광장뿐 아니라 일상의 촛불 들어야


15일 오후 3시쯤 대구 서구 평리동 나눔자리 카페에서 만난 정현정 대구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여·41)은 세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로 지내고 있었다. 지난 2월부터 육아휴직을 사용해 자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이 맞이할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8일 오후 6시 서구주민단체연대가 준비한 서구청 앞 마을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동구, 북구, 달성군 등 대구 각지에서 마을 촛불집회가 열리면서 서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연 집회였다.

“집회에 참석한 어린 학생들이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학생들을 그저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는데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들이 목소리를 내고 주권을 행사하면서 시민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였다.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서도 청년들이 광장으로 나오는 이유를 묻자 더는 포기할 게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입에 성공했어도 취업에 실패하는 청년들이 많다. 삼포에서 시작해 사포, 오포를 넘어 다포(多抛: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등 사회·경제적 압박으로 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세대가 된 현실”이라며 “이제는 포기하기보다는 희망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본인의 청소년기에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때와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주입식 교육과 입시경쟁이 만연했던 그 당시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때는 행복이 성적순이었다면 지금은 수저 색깔순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수저계급론, 헬조선, 다포세대와 같은 사회적 문제가 만연해진 시기는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뒤덮은 건 절망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집회에 참여해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사회는 바뀌어 가고 있다고 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게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 자녀가 자라날 미래를 그리며 “본인의 직업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인격이 존중받는 미래가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빨갱이’ ‘종북’으로 내몰지 않는 사회로 성장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또 광장의 촛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장에 모였을 때만 주권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본인의 주권을 인정받고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탄핵의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는 바뀌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진욱 대구시국청소년단 진행요원

[Y인터뷰] ‘민주주의를 밝힌 촛불집회’ 3인의 평범한 주역들
사진=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어리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가능
어른 되었을 때 부끄럽지 않으려 참여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내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14일 대구시 달서구 본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진욱군(대구 심인고 2학년)에게 시국대회에 참여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최군은 대구 청소년들이 시국대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대구시국청소년단’의 진행요원이다.

최군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온라인 서명 운동, 대구 청소년 시국선언 등 또래 친구들과 함께 시국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최군이 속한 ‘대구시국청소년단’은 매주 수요일 오후에 모임을 갖는다. 모임에선 시국대회 때 쓸 구호, 풍자 그림 등을 주로 논의한다. 지난달 26일 제4차 시국집회 당시 대중교통전용지구의 버스장류장에 걸린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할 것이다’를 제안한 것도 ‘대구시국청소년단’이다.

최군은 “시험기간이 겹쳐 지난 14일에는 모임이 없었지만 벌써부터 17일 제7차 대구시국대회를 위해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SNS 단체 대화방을 통해서 수시로 친구들과 의견을 교류하고 있다. 준비기간이 짧지만 제7차 시국대회 때도 우리들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군은 “드라마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일이 현실에 나타났다. 꼬리를 무는 의혹들을 접하며 교과서에서 배운 정의가 훼손되고 있다고 느꼈다”며 “지금 촛불을 들고 부정한 권력에 맞서야만 내가 살아갈 대한민국이 변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최군에게 촛불을 든 청소년들을 비난하는 일부 집단들에 대해 묻자 “그런 발언들이 오히려 우리의 촛불에 기름을 부었다”며 “우리는 비록 어리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누군가의 조종이나 세뇌가 아닌 자발적인 촛불무장”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날씨가 점점 추워져도 최군은 시국대회의 열기가 식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최군은 앞으로도 시국대회에 반드시 참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부정한 권력의 완전한 퇴진을 위해서 ‘대구시국청소년단’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청소년들의 집회 참여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김형엽기자 khy0412@yeongnam.com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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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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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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