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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옥 <미술평론가> |
며칠 전 전시장에서 만난 모 작가의 말이 가볍지 않다. “개인전을 준비 중인데, 죽을 만큼 힘들어요.” 투정 같지만 죽을 만큼의 열정을 쏟아본 자만의 고통과 희열을 모를 리 없다. 긴 시간 골몰해온 작품에 사인을 하는 일은 빈센트 반 고흐가 타자화된 의자에 자신의 존재를 담는 것처럼 광적인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도 늘 모자란다고 생각되는 것이 예술창작과정이 아닐까. 작가가 쏟는 열정과 예술의 진정성을 탁상공론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고흐의 초기작은 어둡고 무거웠다. 다소 거친 감도 없지 않다. 소재는 하층민의 생활상이 대부분이고 예술의지는 확고부동했다. 교사, 신학생, 화상, 개척교회 전도사는 화가가 되기 전 그의 직업이다. 다양한 직업을 감안할 때 무거웠던 초기작은 선교사 시절에 느낀 가난한 하층민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으리라. 생전에 한 점밖에 팔지 못할 만큼 세간의 관심 밖이었던 고흐의 예술은 가난했던 여생을 외롭게 마감시켰다.
반면 고흐와 동시대에 지방 유지의 아들이던 폴 세잔은 고흐처럼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고집스럽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세잔은 이론을 혐오했으며, 농촌 출신인 자신의 촌스러운 한계를 극복하는 데 골몰했다. 특히 자연의 낯익은 장면을 정면으로 공격한 결과 형태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이미지를 향한 투쟁과 번민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전통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게 했다. 고흐가 현대미술의 순교자라면 세잔의 노력은 현대미술의 선구자가 되게 한 단초였다.
현대는 외롭게 살다 간 고흐의 예술에 동감을 표하고 그를 세계적인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위대한 예술가를 제때 알아보지 못한 셈이다. 세잔 역시 세상에 지녔던 불신감과 침묵을 거둬들인 것은 말년이었으며, 젊은 미술가들이 그를 추종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예술가와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는 긴 시간과 안목이 필요하다. 예술도 진정한 예술가도 우연히 탄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우연한 풍광은 없다. 우연인 듯 필연이었으며 서로 간의 염원이었다. 같은 신념과 의지의 결과이기도 하다. 공들여 마주 빚은 풍광은 아름답고 완성도도 높다. 짧은 시간에 큰일이 완성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필자에겐 두 달간 걸어온 ‘문화산책’ 길이 그랬고, 책 출간과 개인전이 그랬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느라 숨 가빴고 실수도 컸지만 설익은 생각을 경청해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도움 주신 분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기며 다가올 2017년은 더욱 행복하길 두 손 모아 빈다. 서영옥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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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연한 풍광은 없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12/20161226.01022075651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