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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현 <성악가> |
며칠 전 공연을 끝내고 함께 공연한 사람들과 기분 좋은 대화와 맛있는 음식을 나눈 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대구로 향했다. 공연 때의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200㎞ 이상을 더 가야 집에 도착할 수 있는데 눈 때문에 빨리 달리 수가 없어 언제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 때문인지 짜증이 올라왔다. 그때 7년 전 독일에서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추운 겨울 새벽 눈발이 세차게 날렸다. 뉘른베르크 전속 솔리스트를 위한 오디션에 참가하고자 집을 나섰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암울했다. 오디션 당일인데 목이 쉬어 있었다. 감기도 아닌 것 같은데 며칠 전부터 목이 이상하더니, 결국 오디션 당일 최악의 컨디션이 되었다. 70번이 넘게 오디션에 임했지만 잘 아프지도 않아 매번 좋은 컨디션으로 오디션을 봤었다. 패색이 짙었지만 아내와 두 아이를 가진 가장이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디션에 임했다.
뉘른베르크 극장에 도착했다. 반주자와 잠시 연습할 시간이 주어졌다. 오디션에 임할 때쯤 목소리가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기대와 달리 더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최악이었다. 내 목소리를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였다. 드디어 극장장, 상임지휘자, 그리고 연출자들 앞에 섰다. 내 목소리를 들려주기가 두려웠다. 반주자에 의해 노래의 전주가 흘러 나오고 노래할 타이밍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불과 10분 전까지 두세 갈래로 갈라지던 목소리는 평소 컨디션과 다름없는 듯했다. 내가 아닌 어떤 존재가 날 이끄는 듯했다. 아니 확실히 날 이끌었다. 노래를 부르며 내 눈엔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벅찬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드디어 내가 꿈에 그리던 오페라극장 전속 솔리스트가 되었다. 합격 메시지를 받은 날 나와 내 아내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서서히 과거의 기억에서 빠져나와 난 다시 눈길을 200㎞ 이상 달려야 하는 막막함으로 돌아왔다. 짜증이 올라왔던 그때, 과거의 기억을 통해 마음에 감사가 찾아왔고 다시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음에 감사하고, 건강함에 감사하고,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리고 살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했다. 혹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 어떤 어려움이 우리 삶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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