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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봄처녀 제 오시네

2017-02-27
[문화산책] 봄처녀 제 오시네
신문광 <화가>

아직도 날씨는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지만 절기는 겨울바람의 숨소리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며칠 전에 우수가 지났고 다음 주에는 경칩이 된다. 옛날부터 정해놓은 절기는 어김없이 찾아와 제 이름값을 다 해내면서 봄이 어느새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아침에 눈뜨고 창밖을 내다보면 흔들리는 나뭇가지 끝에 바람이 매달려 있고, 나무 그림자가 닿는 땅바닥에는 햇빛 한 자락을 붙잡고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제 곧 새파란 모습을 내밀 준비를 하는 풀포기는 바람과 무슨 말을 저렇게나 주고받고 있는지.

멀리 산 뒤로 구름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걸 바라본다. 이제 곧 겨울바람은 더 버티지 못하고 남동풍에 밀려나겠지. 그러면 풀포기의 새파란 모습도 곧 눈에 띌 것이고 죽은 듯이 있던 어린 나무에도 꽃망울이 터지고 스스로 모든 색깔이 되살아나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겠지.

겨울의 냉기는 모든 목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않도록 그냥 지켜준 것이 아닌가 싶다. 나 또한 겨울잠 자듯 조용히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개운한 마음으로 이번 봄의 전시회를 위한 기지개를 켜고 그림의 주조 색을 상상해본다.

노란색에 주황을 한 점 섞으면 너무 강하고 진해지는 느낌이 나서 성급하게 여름으로 가는 것 같을 것이다. 연두색과 흰색을 한 점씩 섞어 얹으면 레몬 색깔 같은 밝은 봄 느낌이 날까? 배경이 될 바탕색은 아직 어두운 색이 더 어울릴 것이다. 민들레꽃이 피었는지 색깔을 보러 다시 한 번 나가 봐야겠다.

팔레트 대신에 요즘은 대형 플라스틱 접시를 쓰기 때문에 색을 혼합하는 붓의 자리가 넓어서 손놀림이 훨씬 편하다. 노란색이 자꾸 마음에 들어와 따뜻하고 가벼운 밝은 느낌의 색을 만들어 내고 싶어져 흰색을 조금 섞어 명도를 높여 본다.

각종 모임과 봄을 맞는 전시회의 알림장이 차례로 날아오고 행사 메모 정리도 복잡해지기 시작하고 있으니 진짜 봄인가 싶다.

겨우내 힘겹게 살아남은 작은 새들과 길고양이도 달라진 바람에서 뭇생명이 준비하는 에너지를 느끼며 봄이 시작된다는 것을 눈치채고 몸을 단장하듯 온통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들어 내는 일에만 종일 정신을 두고 있으니 기력이 빠져 배가 고파진다.

그래도 이번 봄에 내 마음에 가득 차는 그림으로 올해의 첫 전시회를 시작할 수만 있다면 만족하니, 꿈같은 봄을 기다려 본다. 봄이 오면 내 마음속 어디선가 앳된 여고생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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