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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녘 <성악가> |
나의 스승인 타소니(Tassoni) 선생님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의 할머니는 선생님보다 두 살 아래인 1922년생이다. 할머니는 나의 노래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적이 없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원인 모를 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서 대구의 공연장에 모시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유학 가기 전에 할머니께 다녀오겠다고 하니 “나 살아있는 동안엔 올 거냐”고 계속 물으셨다.
유학 중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매년 한 번씩은 꼭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번에 너 가고 나면 나 없을 수도 있는데 안 가면 안되냐”고 말씀하시곤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그 순간이 점점 가까워짐을 느꼈다. 2012년 큰형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잠시 귀국했을 때 할머니가 어김없이 같은 소리를 하셨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2년 안에 꼭 들어올 테니 그때까지만 더 건강하시라고 이야기하며 로마로 돌아왔다. 그리고 더욱 자주 부모님께 연락해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으며, 남은 유학생활도 열심히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해 가을에 무사히 졸업을 했고, 본격적으로 콩쿠르와 오디션에 집중했다. 2013년 여름 운 좋게 이탈리아 창작오페라의 한 역할을 맡게 돼 준비 중이었다. 공연을 앞둔 1주일 전, 한국 시각으로 새벽 4시경이었다. 그 시각에 부모님의 부재중 전화 메시지를 확인한 것이다. 내 가슴은 철렁했고 전화를 하니 할머니께서 그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순간 나의 꿈을 위해 가족을 소홀히 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났다. 할머니께 잘 해드리지 못한 죄책감에 통곡하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선생님은 힘들어하는 나에게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다.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괜히 선생님과 레슨을 더 자주 했으며,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의 할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곤 했다. 선생님도 “할머니는 이제 먼 곳으로 떠났지만 여기 이탈리아에 너의 할아버지가 있으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할머니에게 더 당당해지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그 결과 여러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2014년 귀국했다.
한 가지 걱정거리는 이제 이탈리아에 계신 할아버지의 건강상태다. 처음 레슨을 받았을 때부터 거동이 불편했던 선생님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귀국으로 인해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던 순간은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던 순간만큼 가슴이 아팠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김동녘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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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나의 이탈리아 할아버지2](https://www.yeongnam.com/mnt/file/201704/20170406.01021074741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