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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사춘기와 갱년기

2017-05-18
[문화산책] 사춘기와 갱년기
김향금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

요즘 들어서 둘째 놈이 가끔 툭툭거린다. 평소에 다정하고 유머러스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놈인데 뭔가 달라졌다. 보슬보슬한 솜털 같은 수염이 올라온 것을 보니 딱 사춘기인 것 같다. 지 말로도 “나 사춘기야” 하고 엄마를 협박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를 어째, 나 역시도 중년의 사춘기에 다다른 것 같은데. 그래서 나도 이야기한다. 사춘기보다 센 것이 갱년기라고. 피로감 때문에 요즘 들어 슬그머니 올라오는 짜증을 맞장구쳐주는 사춘기 아들에게 변명이라도 하려고 아직은 이른 갱년기로 놈을 협박한다.

5월이 가정의 달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춘삼월의 들뜬 봄기운이 가라앉고 한 해의 중반 가까이 다다르는 달이기에 일하기 딱 좋은 시기인 것 같다. 한 해를 시작하는 어수선한 계획도 안정되고 무더운 여름도 아직 오지 않았으니 일도 손에 잘 잡히는 시기. 그래서 가정의 달을 만들었나보다 싶다. 너무 바빠서 가정을 팽개치게 되는 5월이 되지 말라는 의미로.

가끔씩 지하철을 탄다. 운동이 힘든 이유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책이나 보면서 좀 쉬는 여유를 부리고 싶은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한두 시간 짬을 이용해서 꽃시장에 가기도 한다. 이번에는 꼭 잘 돌봐야지 작심을 하고 꽃이나 식물을 사온다. 식물들도 아이처럼 예뻐서 들여다보고 위안을 받지만, 그것도 바빠지기 시작하고 작업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까맣게 잊어버릴 때가 있다. 물때를 놓치면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 어떤 것들은 이내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보니 요즘은 사람들도 물때를 놓치면 안 되는 존재인 것같다. 때를 놓치고 나면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 시들기도 하는 존재. 가까이서 바라봐주고 애정을 줘야지 잘 크는 여린 존재들. 마흔이든 오십이든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나이든 이들도 귀엽게 보인다. 한때는 그렇게 미워서 도망가고 싶기도 했던 엄마마저도 아이 같고 귀여우시다. 아마도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둘째 아이와 사춘기가 세다, 갱년기가 세다 하며 논쟁을 하다 갑자기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가다 둘이서 맞장구를 치면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동시에 골랐다. 한참을 시원한 달콤함에 말을 잃은 채 먹다보니, 사춘기 아들놈과 나는 적막 속에 흐르는 편안한 안정감과 알 수 없는 동질감을 서로 느꼈다. 통했다. 이 순간이 환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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