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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공간

2017-06-07
[문화산책] 공간
김현진

누구에게나 떠올리고 싶지 않는 추억의 공간이 있을 것이다.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출두명령을 받고 처음으로 가 본 법원의 가파른 오르막길, 채용 가능성이 별로 없는 입사 시험 면접장의 텅 빈 대기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몇 해 동안 머물렀던 요양병원의 긴 복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슴 아픈 말을 남기며 헤어졌던 집 앞 골목길.

공간과 사물에는 아무 감정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만 공간의 사물들은 우리에게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주고,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어느 장소나 물건으로부터 느끼게 된다. 법원의 가파른 언덕이나 관공서의 거대한 계단은 우리를 압도하고, 가구와 창문이 없는 방에선 고독이 더해져 누구든지 견디기가 힘들다. 단조롭고 어두운 복도는 우리에게 쓸쓸함과 우울한 감정을 배가시키고, 남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그 골목이 유독 나에게만 아련한 감정을 전해준다.

반대로 마음의 장소와 같은 공간들도 각자에게 있다. 타지 생활을 하다 명절날 돌아가 하루이틀 묵게 되는 옛날 나의 방과 겹쳐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 사무실 근처 공원 가운데서 하늘을 가리고 서있는 큰 느티나무 아래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자신의 자리와 그곳에서 보는 풍경과 동료,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의 끝을 알려주는 동네 풍경들처럼 우리의 마음을 쉬게 하고 다시 삶의 활력을 주는 공간들.

누구에게나 공간은 가장 큰 추억이자 결정적인 환경이다. 자신의 상념뿐만 아니라 내 삶의 사람과 사건들이 그 장소에 무수히 겹쳐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공간을 차지하는 일이고, 어느 순간 우리는 거기에 속하게 된다. 건축이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사람들은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환경의 변화가 실질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데에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르는 길은 사실 내려오는 길과 같은 길이다. 복도는 돌아 나오는 길이자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장소에 있었다는 것은 가장 강렬한 삶의 증거다. 각자는 그 공간 안에서 나름의 할 일이 있었고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것, 그것이 설령 사람이 아닌 꽃과 나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슬픔과 불행의 공간을 우리 삶 한가운데 두는 일은 가장 삶을 열심히 사는 일이다. 고립되어 본 사람만이 진정한 자립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식과 가구가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읽고자 하는 노력만이 나 자신과 공간을 아름답게 만든다.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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