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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현석<영화감독> |
몇 년 전 어느 지인이 ‘폴 토머스 앤더슨’을 아냐고 물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했더니 미국의 천재감독이라고 소개하며 ‘마스터’라는 영화가 개봉했으니 꼭 보라고 추천했다. 당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의 리스트를 방 한 쪽에 붙여놓고 고전과 명작들을 몰아보던 때였다. 그 리스트에도 폴 토머스 앤더슨 영화가 한 편이 아니라 몇 편이나 있었다. 그때 ‘마스터’를 시작으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찾아봤었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놀라웠던 영화는 ‘매그놀리아’였다.
하늘에서 개구리가 비처럼 떨어지는 엔딩시퀀스로 유명한 이 영화는 신선한 구조와 뛰어난 완성도도 완성도였지만 이 영화를 28세 때 만들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공교롭게도 ‘매그놀리아’를 봤던 그때 내 나이가 28세였고 새삼 타고난 재능에 열등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유독 미국에 천재감독이라 불리는 감독들이 많았다. ‘킬빌’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해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잘 만든 B급 영화 수준을 넘어서서 B급 영화에 대한 대중 의식과 영화의 판도를 바꿔놓았으며 수많은 타란티노 마니아를 양성해냈다.
오늘날 ‘킹스맨’으로 유명한 매튜 본 감독도 대표적인 타란티노 마니아다.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등 국내에도 많은 마니아들이 있는 웨스 앤더슨도 28세에 ‘바틀 로켓’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리노의 도박사’,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웨스 앤더슨의 ‘바틀 로켓’은 1990년대 가장 놀라운 데뷔작들로 손꼽히며, 이들 모두 20대에 데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편 그들과 반대로 비교적 뒤늦은 나이에 데뷔하는 늦깎이 감독들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황야의 무법자’에서 할리우드 영화 사상 가장 마초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배우 생활을 시작했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 영화를 연출하면서 자신이 쌓아 올린 영웅주의를 마치 반성하듯 하나씩 무너뜨리며 영화감독으로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창동 감독은 처음에 사범대학을 나와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전업 작가로 활동했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초록 물고기’로 데뷔했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도 처음엔 다큐멘터리 제작자였다가 마흔 중반을 넘겨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혹자는 영화를 만드는 일을 일컬어 ‘천재들의 놀이터’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과 기교만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점점 천재감독들의 영화보다 늦깎이 감독들의 영화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고현석<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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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천재들의 놀이터](https://www.yeongnam.com/mnt/file/201711/20171124.01016074837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