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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현<피아니스트> |
일본 소설가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보면 ‘어째서 동양인이 서양 음악을 하는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작가는 소설에서 동양인, 특히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민족성(격렬함 혹은 처연함)과 클래식 음악의 드라마틱한 성격이 잘 맞기 때문에 서양 음악을 많이들 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콩쿠르나 국제 무대에서 승전보를 알리며 한국인들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비단 콩쿠르뿐만 아니라 이미 독일과 미국 등의 음악학교에서도 한국인을 포함한 많은 동양인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서양음악의 본질 혹은 뿌리는 동양인이 절대 흉내를 내거나 가질 수는 없다는 일종의 편견과 불편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 필자에게 가장 두려웠던 작곡가는 베토벤이었다. 베토벤의 나라와 그 후예들 사이에서 베토벤을 연주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레슨시간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열린 작은 연주회에서도 “‘우리’의 베토벤을 동양인인 네가 어떻게 연주하는지 궁금하다” 혹은 “‘우리’의 베토벤은 이래야만 해!”라는 시선과 그들의 작곡가에 대한 자부심은 서양 음악을 하는 동양인 음악학도가 느끼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음악과 미학적 기준을 확고히 가지고 있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가끔은 아예 귀를 막고 검은머리 학생이 연주하는 자신들의 음악은 평가절하하는 이들 때문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던 기억도 난다. 한편으론 정말로 그들의 귀에는 우리가 외국인이 아리랑을 부르면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동양인이 서양의 음악을 할까’라는 물음에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다 리쿠와 같이 민족의 기질과 음악의 성질 사이에서 그 답을 찾기도 할 것이며, 또는 빠르게 전파된 서양 문물과 동서양의 경계가 모호해진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들을 찾는 것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와 문화에 깊숙이 스며든 서양음악에 ‘우리’만이 가진 정서를 조화롭게 융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태생적으로 다른 각 민족 고유의 음악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어떤 나라의 음악이든 본질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점은 같을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바흐의 미뉴에트 3박자 춤 리듬은 몸에 익숙하지 않지만 선율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동서양의 음악을 구분 짓고 나누기보단 음악의 본질 속에서 ‘우리’의 자존감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기를 바란다. 박소현<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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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의 음악](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02/20180201.01022075917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