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백운선<연극배우> |
며칠 전 버스 안에서 뜻밖의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얼핏 보면 20대 아가씨로 착각할 정도로 훌쩍 자랐지만 예전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윤이(가명)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고 한다. 너무 오랜만이라 “네가… 이름이 OO이지?” 하고 묻는 나에게 지윤이는 수줍게 대답한다. “지윤이요. 둥둥 선생님.” 아이는 다시 수줍게 묻는다. “선생님, 요즘도 애들하고 연극놀이 그런 거 해요?” 잠시 잊고 있었던 5년 전의 기억이 소환된다.
5년 전, 내가 살던 동네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공부방에서 초등학생 10명 정도를 모아서 연극을 가르쳤다. 당시 초등 6학년이던 지윤이는 1학년인 남동생 손을 잡고 연극수업에 참여했다. 연극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린 남동생을 돌봐야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 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교실 구석에 앉아 다른 아이들이 수업받는 모습을 구경만 하다가 마치면 동생을 데리고 공부방을 빠져나가기 바빴던 지윤이는 몇 개월 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보조 강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동생들을 케어하고 수업 준비물도 챙기고 내가 오기 전에 미리 출석체크도 하는 등 나를 열심히 도왔다.
지윤이의 이런 변화는 연극수업 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후였다. 아이들이 친구에게 각각 편지를 한 장씩 써서 그 편지를 직접 친구네 집 우편함에 넣고 오는 활동이었다.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앞다퉈 자기네 집으로 안내했다. 나중에 우체통을 열어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그날 우리 집 우편함은 아이들의 편지로 가득 찼다. 그 후로 아이들은 나를 스스럼없이 대했고 공부방이 아닌 골목에서 우연히 만나도 아주 큰소리로 “둥둥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냥 인사를 받을 뿐인데 나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그 후에도 종종 우리 집 우편함엔 한 아이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바로 지윤이였다. 그 마음이 고마워 나도 답장을 써서 지윤이네 집 우편함에 넣어두고 오기를 몇차례 반복하는 동안 나는 지윤이의 어려운 가정형편과 할머니 혼자 가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정까지 알게 되었다. 지윤이는 나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조금씩 푸는 것 같았고, 나에 대한 고마움을 수업 진행을 돕는 것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3년간 지속했던 공부방 수업은 내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고 차츰 서로를 잊고 지냈던 것이다. 며칠 전 지윤이와의 뜻밖의 마주침은 5년 전 그때 그 골목의 아이들과의 추억을 소환했다. 모두 다 잘 지내고 있을까? 아직도 둥둥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을까?
백운선<연극배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