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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결핍과 상상력

2018-03-02
[문화산책] 결핍과 상상력
김지영<극단 만신 대표>

최근 극단 식구들이 모여 새로 준비 중인 공연의 기획회의를 했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필요한 것은 많고 아낀다고 해도 필요한 금액도 자꾸만 늘어만 가니 시간이 지날수록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그런 식으로 진행하던 중 이제 막 연극을 시작하겠다고 찾아온 친구가 투박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졌다.

“휴대폰 플래시 켜고 하면 안 돼요? 그 조명기라는 게 꼭 있어야 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이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야’‘휴대폰 불빛이 어떻게 조명 대신이 되냐’ 등의 부정적인 말이 우리들 사이에 소리 없는 눈빛으로 오갔다. 하지만 잠시 뒤 나는 말했다. “네 말이 맞다! 왜 꼭 그렇게 해야 하지?”

물론 야외공연에서 넓은 공간을 휴대폰 불빛으로 밝힌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친구의 말 덕분에 우리는 ‘원래 있어야 하고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더 많은 가능성과 새로운 방법들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무대·객석·조명·음향·홍보를 비롯한 다양한 부분에서 엽기발랄한 아이디어들이 봇물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디어 중에는 꽤 재미있고 훌륭한 것들이 많았고, 칙칙했던 회의는 즐거운 상상의 장이 되었다. ‘원래 있어야 하는 것’을 다 갖출 수 없었던 우리의 결핍이 역으로 우리의 상상력에 자유를 준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은 예전에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빛’이라는 것이 중요한 극적 화두였음에도 조명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곳에서 공연을 해야 했을 때가 있었다. 고민 끝에 그때는 배우가 전기열풍기와 촛불·손전등 3개를 직접 끄고 켜는 것을 극의 내용과 엮어 진행해 모든 기계적 조명을 대체했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효과가 필요할 때에는 관객들에게 잘게 찢은 종이조각을 눈 대신 뿌려달라고 부탁했고, 어떤 공연에서는 뻔뻔스럽게 관객의 눈앞에 갈색 털실 뭉치 하나를 감아놓고 짜장면이라 우기기도 했다.

수많은 기술과 관습은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로 생각과 표현의 가능성을 한계 짓고 방해하게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어느새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스스로 반성해 본다. 어쩌면 결핍에 대한 자기변명이나 위안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로부터 아주 조금 자유로워지기로 했으니 이번 공연을 만드는 동안은 즐거운 상상을 계속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김지영<극단 만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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