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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소설 읽으며 느리게 사는 삶

2018-09-19
[문화산책] 소설 읽으며 느리게 사는 삶

직장에서는 시간에 쫓겨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퇴근길마다 나는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중얼거리는 게 일상이었다. 언젠가 익숙해지겠거니 생각했지만 결국 견딜 수 없어 회사를 나왔다.

퇴사하고 세상이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TV에서 가수가 방송 활동하는 모습도, 거리에서 마주치는 광고들도, 기업에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예전에는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르게 느껴졌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을 위해 나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을 직장인들을 생각하니 조금만 천천히 변화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모습은 책 시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매일 내가 다 훑어보지 못할 만큼 많은 책이 출간되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매일 다른 책 광고를 볼 수 있다. 책방을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화제가 되는 새로운 책이라면 무조건 입고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 소개할 수 있는 책은 한정되고, 책은 쏟아지고 있어 따라가기 벅찼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화제의 신간 무조건 입고는 포기했다. 대신 2017년에 읽었던 책 중 올해의 책으로 한 권을 꼽아 책장 한 곳에 자리를 마련했다. ‘커피는 책이랑’에서 꼽은 2017년 올해의 책은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다. 더불어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오로지 즐거움’이라는 책 읽기 모임에서 정세랑 작가의 책들을 여러 사람과 함께 읽었다. 한 작가를 두고 그가 쓴 책들을 모두 읽는 것은 신간을 읽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안겨줬다.

정세랑 작가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탁구를 치듯 주고받는 대화들은 줄을 치며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전체적으로 작가가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희망을 놓치지 않도록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직업에 대한 묘사가 깜짝 놀랄 정도로 섬세해서 함께 읽은 직장인들과 직장에 대한 토로의 장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오로지 즐거움’을 통해 단행본으로 나온 정세랑 작가의 소설책은 모두 다 읽었고, 지금은 다른 작가의 소설책으로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마음 같아선 더 빨리 새로운 책을 만나고 싶다고 정세랑 작가를 독촉하고 싶지만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재미있게 읽었던 ‘보건교사 안은영’이 드라마화된다고 하니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날이 오길 고대하고 있다.

쫓기지 않고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영업도 시간을 쪼개 살짝 뛰면서 운영하고 있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더 느리게 살 방법은 없을까 궁리는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틈틈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가면서 나와 비슷한 목소리를 찾아 좀 더 느리게 삶을 살고 싶다.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게 잘 버틸 수 있기를 바란다.

김인숙 (카페책방 ‘커피는 책이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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