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부대찌개 |
![]() |
| <전통음식전문가> |
부대찌개는 6·25전쟁이 낳은 음식으로 비록 역사는 짧지만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동·서양 식문화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햄, 소시지, 미국식 콩 통조림 등에 김치, 고추장, 고춧가루 등을 넣고 끓인 부대찌개는 부대에서 군인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고 부대 주변 사람들이 주로 해먹기 시작한 음식이다.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햄, 소시지 등을 몰래 갖고 나와 막걸리 안주로 만들어 먹었던 것이 시초라고 한다.
부대찌개는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먹거리가 부족한 배고픈 전쟁통에 고기가 귀해서 먹어보니 고기를 주재료로 만들었지만 고기 맛도 아니고 반찬으로 먹기에는 우리 입맛에 뭔가 느끼하고 부족함을 느낀 것이 얼큰한 국물로 변해 점차 새로운 음식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한 이유였다. 6·25전쟁 직후 농촌에서는 3월부터 보릿고개라 양식이 떨어져 쑥, 칡뿌리, 소나무껍질 등으로 보리쌀 몇 개를 넣고 죽을 멀겋게 끓여 연명을 했고, 도시의 일부 서민들은 꿀꿀이죽으로 연명을 했다.
1960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보통 돈벌이가 안 되는 날은 꿀꿀이죽이다. 꿀꿀이죽이란 다름 아니라 미군부대 취사반에서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 찌꺼기를 주워 모아 한국 종업원들이 내다판 것을 마구 끓인 잡탕죽이다. 단돈 10환이면 철철 넘게 한 그릇을 준다. 잘 맞닥뜨리면 고깃덩어리라도 얻어 걸릴 수 있지만 때로는 담배꽁초들이 마구 기어 나올 수도 있다. 대개 꿀꿀이죽은 아침이 한창, 한가마 끓여도 삽시간에 낼름 팔리고 만다.” 남대문 시장에서 UN탕이라 하며 팔리던 꿀꿀이죽 기사다.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잘 보여주는 음식이 꿀꿀이죽이다.
꿀꿀이죽이 부대찌개의 원조는 아니다. 1960~70년대는 햄, 소시지 등을 생산할 생각도 못할 만큼 우리나라의 축산 기반과 식품 제조능력은 너무 빈약했다. 1967년 예쁜 분홍색 소시지가 처음 판매되었는데 소시지 모양이지만 찌개를 끓이면 다 풀어져 버렸다. 80년대 중반에 들어서 돼지고기 등이 들어간 햄, 소시지 등이 개발되면서 미군부대의 제품과 비슷한 식품이 국내기업에서도 생산되기 시작해 국산 햄, 소시지 등으로 찌개를 끓일 수 있게 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대찌개는 외식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원조 부대찌개의 발상지는 미군부대지역으로 상징되는 의정부에 부대찌개 집이 점차 늘어나면서 지금의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가 조성되었고, 1998년 ‘의정부 명물찌개 거리’의 정식 명칭을 얻게 되었다. 이제는 전쟁의 아픔이 탄생시킨 부대찌개가 외국인까지 즐겨 찾는 의정부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날씨가 점차 쌀쌀해지면서 얼큰한 부대찌개가 생각나는 계절이 왔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부대찌개](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10/20181010.010300815550001i1.jpg)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부대찌개](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10/20181010.010300815550001i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