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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문학] ‘자기’의 매력

2019-06-20

연인이나 부부사이 아닌데
남성도 ‘자기야’호칭 많아져
공적관계서 시간 흐르면서
친밀감이 높아졌다는 의미
초기관계서 사용은 역효과

[우리말과 한국문학] ‘자기’의 매력

최근 방영되고 있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이 다른 남성 진행자를 “자기야”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자기’는 여성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는 호칭어로, 남성 사이에서도 이 호칭어가 사용된다는 것이 매우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계속 보다 보니 유재석이 다른 진행자인 조세호를 “자기야”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반인을 만나 그들 인생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프로그램인지라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함이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석은 처음 만나는 일반 시민과 친밀하면서 격의 없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이런 노력이 나이가 더 적고 후배인 조세호를 “자기야”라고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조세호씨”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딱딱하고, “세호야”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하대하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이 ‘자기’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먼저 ‘영희는 철수에게 자기 물건을 주었다’에서처럼 ‘자기’는 앞에 나온 ‘영희’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자기야, 오늘 만나자”에서와 같이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상대를 부르는 호칭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인이나 부부가 아닌 사이에서도 호칭어로 ‘자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선배가 여성 후배에게 “자기, 오늘 회의 장소 어디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 후반부터 50대 여성이 성인이 되어 알게 된 관계에서, 나이가 화자와 같거나 적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여성에게 사용한다. 이 외에도 여성 상위자가 남성 하위자에게 ‘자기’라는 호칭어를 써서 친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게 사용되는 ‘자기’는 주로 여성이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재석의 경우처럼 남성이 ‘자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기’라는 단어의 사용 환경이 점점 확장되어 온 것이다. ‘자기’가 부부나 연인들 사이에서 상대를 부르는 말로 사용된 것은 1970년대부터라고 한다. 그 이후 여성 대화자들 사이에서 ‘자기’라는 호칭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현재는 남녀 또는 남성 대화자들 사이에서도 사용되고 있어 ‘자기’의 사용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남성이 ‘자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만난 60대 여성분은 남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 쓰냐면서 화를 내기까지 했다. 필자가 요즘은 남자들도 사용한다고 하니 아주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이처럼 남성들이 ‘자기’라는 호칭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아주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중부 지방과 비교했을 때 경상도 지역은 더욱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이 주로 사용하던 ‘자기’를 남성들 또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남성이 ‘자기’를 사용하는 변화는 현재 초기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 보면 관계의 성격이 바뀔 수밖에 없다. 친밀하지 않던 사이가 친밀하게 되기도 하고, 격식을 차리던 사이가 격의 없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이런 관계 변화를 잘 드러내는 말이 ‘자기’가 아닐까 싶다. 성인이 되어 직업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면 관계의 시작은 공적 관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친밀도가 높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비격식적인 상황에서, 높아진 친밀감을 강조하기 위해 ‘자기’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여러분을 ‘자기’라고 부른다면 상대방이 나와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구나, 상대방이 나를 친밀하게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더욱 열면 된다. 또 여러분과 나이가 같거나 적은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고 싶다면 ‘자기’라고 부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남성들이 ‘자기’를 호칭어로 사용한다고 해도 화내거나 놀라지 말자. 단, 관계를 맺는 초반부터 ‘자기’라는 말을 사용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어느 정도 관계가 진전되고 격의 없는 사이가 되면 ‘자기’라는 말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홍미주 (경북대 교양교육센터 강의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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