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629.010220752130001

영남일보TV

[y인터뷰]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06-29

“태어날 때부터 가업이 수산업…역경 이겨내는 법 바다서 배워”

20190629
지난 5일 고려대 법학관에서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자신의 특이한 이력을 설명하며 “역경을 이겨내는 법을 바다에서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3월8일 문재인정부 제3기 개각 명단 발표 직전에 일부 언론에선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로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문성혁 세계해사대학교 교수가 막판까지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종적으로는 문 교수가 김영춘 전 장관 후임으로 낙점됐지만, 함께 경합했던 김 교수(60)는 영덕 출신인 TK(대구경북) 인사다. PK(부산·울산·경남) 인맥이 강세인 문재인정부에서, 그것도 PK 출신 인사들이 독점하다시피하는 해수부 장관 후보로 경북 출신 인사가 거론된 데 대해선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지난 5일 고려대 법학관에서 만난 김 교수의 특이한 이력과 남다른 자질은 장관 후보에 오른 배경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영덕 축산항서 태어나 초·중·고 고향서 졸업
국립한국해양대학 입학하면서‘해양’과 인연
10년 남짓 선박에서 근무하며 선장까지 진급
회사 대신 소송 대응하며 해상법에 관심 가져

경주∼울진, 수많은 어민이 생계 이어가는 곳
해수부장관 21명중 경북출신 단 한 명도 없어
바다에 대한 관심 부족한것과 무관하지 않아
동해안에 ‘심해양식’ 등 새 사업개척 필요


김 교수는 1959년 영덕 축산항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초·중·고교를 모두 졸업했다. 김 교수는 “조부님이 광복되는 해에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어선 한 척을 사오신 게 계기가 돼서 제가 태어날 당시 50t 내외의 대형어선 3척을 가진 선주 집안이었다”면서 “그러니까 제가 태어날 때부터 가업이 수산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77년 영해고를 졸업한 뒤 상선의 선장을 양성하는 국립 한국해양대학에 입학하면서 해양과 인연을 맺었다. 해양대 졸업 뒤에는 항해사로 출발해 10년 남짓 선박에서 근무하면서 선장까지 진급했다. 결과적으로 해양수산부의 ‘해양’과 ‘수산’ 두 분야를 직접 현장에서 체험한 셈이다. 이후 뜻하지 않은 계기로 해상법을 공부하게 됐고 학자의 길을 꾸준히 걸은 결과, 지금은 국내 명문 대학의 로스쿨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해상법 전문가로 성장했다.

지난해 7월 김영춘 전 장관에 의해 해수부 정책자문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해수부 정책 전반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 김 교수는 “해양수산 주요 정책에 대해 전문가로서 의견을 제시하고 또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개각 당시 해운업계뿐 아니라 물러나는 김 전 장관도 김 교수를 추천했던 것은 그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여기까지 보면, 김 교수는 여러 해양전문가 중에서 특별한 인연 덕분에 장관 후보 명단에 오른 것으로 이해된다. 인터뷰 직후 김 교수는 ‘바다와 나’라는 자신의 저서를 갖고 학교 도서관에서 북콘서트가 예정돼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1시간 정도 김 교수의 ‘저자 직강’을 들어보니, 김 전 장관이 김 교수를 추천한 또다른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김 교수는 말머리에서 “시골 면 단위 고등학교를 나와 저처럼 명문대학 교수까지 오른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면서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풀어냈다. 그는 역경과 극복이 뒤섞인 자신의 여정을 떠받쳐온 저력으로 ‘대가족의 인성교육’과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어린 시절 조부모를 비롯해 진외조부, 삼촌, 사촌까지 합쳐 16명인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면서 “거기다가 어부들 20~30명이 사랑방에 기거할 때도 있어 어릴 적부터 어른들의 지혜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융화하는 법을 터득했다. 특히 조부는 1952년 국내 최초 지방선거 때 경북도의원에 당선돼 4년간 지역 대표로 활동한 정치 이력의 소유자로서, 김 교수를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업의 주력 선박이 좌초사고를 당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부친은 가업의 일부였다가 소유권이 넘어간 동네 조선소에서 어선 페인트칠을 하면서 대가족 생계를 꾸려나갔다. 흔들리기 쉬운 그때 그를 붙잡아준 것은 대가족 공동체의 힘이었다. 김 교수는 “비록 시골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누구네 손자’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라났다”면서 “집안의 이름에 누(累)가 되는 행동은 하지 말고 사회의 리더가 되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을 항상 염두에 두고 처신했다”고 말했다. 학비 부담이 없고 취업이 잘 된다는 판단에서 한국해양대학을 택했지만, 대학 4년간 해군 ROTC를 거치면서 절제된 생활과 리더십, 투철한 국가관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또다른 좌절이자 대전환점은 32세 때인 1991년 선박 좌초사고를 겪으면서 찾아왔다. 세계 굴지의 해운사인 일본 ‘산코 기센(Sanko Line)’에 입사해 선장까지 진급한 후 첫 항해에서 당한 일이었다. 대형상선에 인광석을 가득 싣고 호주 남서부 앞바다를 항해하다 해도에 표시되지 않은 암초에 부딪히면서 배가 가라앉았다. 김 교수는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지만, 좌초사고를 당하면 사회에서 전과를 의미하는 ‘별 달았다’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면서 “처음에는 부끄럽고 많이 위축됐지만, 부친의 격려와 내면의 채찍질로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회사를 대신해 손해배상 소송에 응하면서 해상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법학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35세 때인 1994년 늦깎이로 고려대 일반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을 졸업할 무렵, 대형 로펌인 ‘김&장’의 입사 제의로 국내 최고 율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해상법 실무현장에서 뛰기도 했다. 1999년 고려대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목포해양대에서 8년간 강사와 교수로서 강단에 섰다. 하지만 법학자의 길을 기초부터 새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서 2005년 고려대 법대 3학년으로 학사편입했다. 당시 나이 46세였다. 주위 교수들이 말렸지만, 기어이 시험을 통과한 뒤 ‘03학번’으로 나이 어린 동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학업에 정진했다고 한다. 졸업 후 부산대 법대 교수로 잠시 재직했다가 2009년 국내 해상법 권위자인 채이식 교수의 학맥을 이어받아 고려대 법학교수로 임용됐다. 2016년부터 2년간 한국해법학회 회장을 지냈고, 2016~2017년 2년 연속으로 법학자 중 논문인용지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현재 국내 법학전문대학원 중에서 김 교수는 해상법 관련 강좌를 가장 많이 개설해 해상법 전문변호사 배출에 힘쓰고 있다.

김 교수에게 바다는 60년 인생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였다. 그는 “바다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면서 “고향 바다 덕분에 해상법 전문가로의 길이 열렸고, 두 번의 선박 좌초로 부정이 닥쳤을 때도 역경을 이겨낸 힘은 바다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 근거로 “저는 한국해양대학에서 해운을 위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면서 “교육이 잘못되지 않는 한, 엘리트가 한두 번의 실패로 무너질 수는 없는 것”이라며 모교에 대한 자부심도 피력했다.

김 교수는 경북 동해안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경북은 경주에서 울진에 이르기까지 긴 해안선을 갖고 있으며 수많은 어선들이 출어를 하고 어민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라면서 “그럼에도 바다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다. 지금까지 해수부 장관이 21명 배출됐는데, 경북 출신이 단 한 명 없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지금 어자원 고갈을 막기 위해 어선 수를 줄이고 있고 양식업도 한계에 부딪혀 새로운 사업분야 개척이 필요하다”면서 “동해안의 깊은 앞바다에 운동장 같은 큰 공간을 만들어 물고기를 대규모로 양식하는 기업형 ‘심해양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김 교수의 말에는 긍정적 마인드와 강한 자존감이 배어 있었다. 자신의 명함 직함에 ‘교수’와 ‘선장’을 병기할 정도로 ‘선장’에 대한 긍지도 강했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유효기간 5년인 선장 면허를 갱신했다”면서 “2025년 정년 퇴직 후에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 크루즈를 운항하는 선장이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저는 국비로 교육을 받은 선장 출신의 해양수산 분야 전문가다. 어떤 정권이든 국가가 부르면 달려가서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게 제 신념”이라고 공복(公僕)에 대한 강한 의지도 드러냈다.

글·사진=권혁식기자 kwonhs@yeongnam.com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