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박인성<미술작가> |
나는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시를 읽는 것을 어려워했다. 철학서나 타인의 논문을 읽을 때에도 비록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와 함께 즐거움 또한 느껴진 반면에 시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 점을 ‘극복’해 보고자, 부지런히 시를 ‘이해’하고 ‘분석’하던 시기가 있었다.
10년 전 즈음인가. 그런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배 하나가 나에게 책을 건냈다. 피카소의 시집이었다. 너무 자주 마주쳐서 더이상 반가움조차 없던 화가의 시집이라니. 일단 궁한 마음에 별말 없이 나는 그 시집을 읽었더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후로 정확히 그의 조각난 시 이후부터 나는 더이상 시집을 고르기 위해 서점을 찾지 않게 되었다. 시로부터 혹은 시를 향한 기대감이 조각나 버렸기 때문일까. 이제는 시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어려움이 되었다. 파편적으로 마주치는 시를 피해 달아나지는 않지만, 더 이상 서점에서 자의로 시집을 꺼내 들지는 않게 되었다. (당연히) 나의 경우와는 달리 피카소와 그의 어머니는 (그의) 시를 사랑했던 모양이다. 피카소가 화업을 접고 시의 집필에 몰두한 기간이 약 25년(1935∼1959)인데, 그 사이에 어머니와 주고받은 서신에는 피카소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훌륭한 시인이 되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시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불만이 토로되어 있다. 실망하며 후회하는 그를 지지하며 끊임없이 응원을 보냈던 이가 그의 어머니였다.
서신 속 그의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반드시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미 화가로 커다란 성공을 이룬 훌륭한 예술가인 자신의 아들이니, 그에 대한 믿음이 오죽했을까. 비록 그런 그녀의 바람과 믿음은 현재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은 듯 보이지만, 피카소의 시와 그가 화가뿐만 아니라 시인이었다는 경력은 남았다. 그토록 원하던 (훌륭한)시인으로 세상에 남게 된 것이다.
피카소가 과연 훌륭한 시인인가, 그리고 그가 남긴 시가 현재까지 의미 있게 다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박해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화가이자 시인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피카소 자신과 그리고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어머니가 간절히 소원했듯이.
복잡하게 얽힌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예술가와 예술작품은 태어난다. 젊은 시절의 피카소를 시에 눈 뜨게 해준 막스 야콥과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단 한 명일지라도 피카소가 포기하지 않고 시를 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진실한 응원과 찬사를 보냈던 그의 어머니의 경우와 같이 말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어려움은 바로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무관심일 것이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더 낫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그것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예술과 예술가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그 무엇 일지도 모른다. 마치, 혼자서만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박인성<미술작가>
인터넷뉴스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산책] 조각난 눈(目)이 쓴 詩](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7/20190715.01022074050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