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 섬, 말간 물에 씻어주는 이가 시인”
동해 바다에는 울음을 넘는 몸짓이 있다. 맑은 날이면 울릉도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독도의 절박한 몸짓이다. 최근에도 우리 군이 독도 인근 우리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에 경고사격을 한 것을 빌미로 일본은 또다시 ‘독도 영유권’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그 곳은 엄연히 우리의 역사가 뿌리를 내린 우리 땅이다. 손(損)을 타서는 안 될 우리의 바다다. 독도야말로 아침햇살이 본토로 건너오기 전에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는 섬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끔 독도가 진짜로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상상을 한다. 때로는 탕건을 쓰고 사랑채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모습으로, 때로는 다보탑을 돌고 있는 젊은 아낙의 모습으로 어른거리는 두 개의 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곳에 짙은 해무가 드리우면 사자후가 들리는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소리는 독도에서 사라진 강치들이 부르는 구슬픈 아리랑이란 것을. 그럼에도 나는 뭉크의 그림에서처럼 동해가 핏빛으로 물드는 환상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가 없다.
당선 전화를 받고 한동안 멍했지만,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독도를 우리의 고택(古宅)이라고 믿고 싶은 내게, 독도강치가 반드시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내게 보내주신 격려는 큰 응원이지만, 자중하고 싶었다. 상처투성이 섬의 심장을 꺼내 말간 물에 씻어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믿었을 뿐, 대상까지는 욕심내지 못했다. 그래, 독도야, 고마워. 넌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게 섬이 아니라, 늘 마음 속에 있다는 걸 깨우쳐줬단다. 그래 그래, 네 아픔은 환상통이 아니었지. 끝으로 심사위원님들과 대한민국독도문예대전 관계자 여러분께도 고개 숙여 감사 인사드립니다. 시인은 대속자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를 낳아준 엄마. 엄마에게 저는 독도 같은 섬이었을까요.
인터넷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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