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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서 그런지 제 주변 시인들의 새 책 출간이 한창입니다. 시집도 있고 산문집도 있습니다. 지난 몇 해 동안 대구경북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 여러 시인들의 출간기념회를 지켜보거나 진행을 맡았습니다. 출간기념회는 말 그대로 출간을 기념하고 축하받는 자리여서 프로그램이 다양했습니다. 새 책이 나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주변의 예술가들이 합류해 연주나 노래, 시낭송 등을 해주셨습니다. 프로그램이 다양한 것은 좋았으나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면 시집 출간기념회에서 시인의 시집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축사나 공연에 할애한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시집은 사서 읽어보지도 않고 눈도장만 찍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행사는 겉만 화려하고 실속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뒤풀이의 술값이나 음식값까지 작가가 부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축하가 아니라 폐를 끼치는 행사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문제를 너무나 잘 알기에, 제가 진행을 맡은 출간기념회는 올해부터 모두 ‘낭독회’로 하자고 주변의 작가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새 책이 나오면 작가는 낭독회 이전에 주변 지인들에게 미리 책을 발송합니다. 미처 구입하지 못 한 분들은 낭독회 당일, 현장에서 구입하면 됩니다. 이렇게 모두 책을 준비해서 입장합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보통 40편에서 60편 정도인데, 요즘은 시집이 점점 얇아지는 추세라서 25편 안팎의 시집들도 속속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 시들을 낭독회에 오신 분들이 돌아가면서 함께 읽는 것입니다. 오롯이 시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시의 내용이 궁금하면 시인에게 바로 질문하고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소설이나 산문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문장들을 함께 낭독하며 작가와 온전한 교감을 나누는 시간이 바로 ‘낭독회’입니다. 준비도 번잡하지 않고 진행도 오직 책에만 집중해서 하면 되기에 시간 낭비도 적습니다. 음향도 악기도 필요 없습니다. 소박한 공간에서 작가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성껏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됩니다.
지역의 작가 분들께 제안드립니다. 앞으로 새 책을 출간하면 ‘낭독회’ 모임을 많이 열어주십시오. 시나 산문을 낭독하며 작가와 호흡하는 시간이야말로 독자들에게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축하하러 온 분들이 오히려 주인공 행세를 하거나 쓸데없는 말로 분위기를 망쳐놓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진행자는 뒤에 숨어서 말하는 듯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절제해서 드러내야 합니다. 대신에 작가나 독자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진행자가 작가보다 말이 많은 경우를 보는데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부득이한 경우에 축사를 한다면 책과 관련한 내용으로 아주 짧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앞으로 제가 진행하는 출간기념회는 대부분 낭독회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오직 책에만 집중하는 낭독회를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김수상 (시인)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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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낭독회를 엽시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10/20191024.0102307515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