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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바바라에게

2019-11-08
[문화산책] 바바라에게

몇 해 전 딸아이와 여행할 때였어요. 뉴욕 34번가, 당신은 섹시하기로 유명한 V브랜드 매장에 근무하고 있었죠. 뉴욕에 가면 이 선물 하나쯤은 산다하기에 안으로 들어갔지요. 하늘거리는 뻥 뚫린 속옷 사이에서 딸애와 나는 아마 넋이 반쯤 나갔을 거예요. 그즈음 당신이 다가왔죠. “하이~ 왓두유원트?” 가슴의 이름표에 ‘Babara’라고 적혀있더군요. 얼버무리는 사이 당신은 입어보길 권했어요. 탈의실 앞으로 끌려갔고 당신은 내게 한참 동안이나 만화 같은 변화무쌍한 표정으로 말해줬어요. “와이낫, 트라이 잇. 유캔 섹시.”

“노노, 디스 아이템 투 머치 섹시.” 말이 되든 말든 막 지껄인 나에게 당신이 들려주는 얘기는 다음과 같았어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여기 미국은 말이야, 당신처럼 덩치 작고 인종이 다른 여자들을 차별하기 일쑤야. 봐, 난 흑인이야. 그렇지만 늘 웃으면서 자신 있게 살아. 동양여자들은 대부분 당신처럼 수줍음이 많아. 그러나, 이 속옷을 입으면 자신감을 가지게 될 거야.”

덕분에 우리는 입지 못할망정 그 제품들을 구입했지요. 섹시하고 싶어서? NO! 차별을 말하던 당신의 눈을 기억하고 싶어서.

바바라 당신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색인종으로 또 여성으로 살고 있고 아마도 돈이 많거나 권력이 세지는 않을 거예요. 점원으로 일할 정도면 최저임금을 벗어난 지 오래되지도 않았을 거고요. 최근 한국에서 촉발된 조국 논쟁, 영화 기생충과 조커 등을 보며 이상하게 당신 생각이 자꾸 났어요. 영화 조커의 배경이 뉴욕이라서인지 ‘그날의 바바라는 지금 저 거리에서 잘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났죠. 그리고 “이곳은 차별한다”고 찡긋거리던 당신의 표정에서 삶의 고단함을 느낀 것은 나만의 과도한 해석일까요.

프랑스 사회학자 브루디외는 자본을 크게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 상징자본으로 나눴죠. 이 네 가지가 상호 잘 교환돼야 건강한 사회인데, 예를 들어 문화적 취향이 높거나 바바라처럼 사교성이 좋아도 금전적 자본으로 교환가능해야 하죠. 하지만 최근엔 돈만이 돈을 낳는 사회가 됐다고 다들 걱정이랍니다.

나 역시 그날의 당신처럼 열심히는 살았지만 금전적 층위를 뛰어넘을 길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 다시 생각나는 바바라. 섹시한 속옷으로 자신감을 무장하지 않더라도 그대 그곳에서 잘 있나요? 추운 여행길에 지친 나와 딸아이에게 빵 터지는 웃음을 준 당신이 그곳에서 내내 안녕하기를. 차별에도 당당하기를. 그리고 당신의 호방한 웃음이 언젠가는 돈, 아니 그 이상으로 치환되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요. 그런 날 뉴욕에 다시 들러 이 몸 칠순이라도 그대 앞에 섹시를 보여주고 싶소. 잘 버텨요 세상의 모든 바바라.

서상희 (크레텍책임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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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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